정부, ‘WTO 제소’ 맞대응 카드 언제 꺼낼까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2일 1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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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WTO 제소 위한 증거 수집 등 준비작업 진행
이달 말 日개정안 발효 이후 제소 일정 윤곽 나올 듯
양국 '가트' 조항에 대한 해석 두고 논쟁 예상

정부는 일본의 백색국가(수출 우대국) 제외 결정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세워뒀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칼을 빼 들 시점만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WTO 협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고 제소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통상 WTO 제소 절차는 양자협의 요청서를 제시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요청서는 제소장 역할을 하는 만큼 충분한 검토를 거친 이후에 일본 정부에 보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소범위와 성격을 한번 규정하면 수정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백색국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이 발효되는 시점 이후에 제소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앞서 수출규제 조치를 받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소재 3개 품목 이외에 추가로 문제가 되는 품목까지 더해서 제소에 나서야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공포되면 21일 이후인 이달 하순께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WTO 제소 시점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규제 조치에 따른 구체적 피해 사례 등 증거 수집에만 몇 개월이 소요될 수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소송이 시작되면 수백 가지 판례가 인용되고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서 적용하게 된다”며 “따라서 이런 판례들은 소송 전에 당연히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제소 준비는 이보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소송이 시작되면 한일 양국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가트)’의 조항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트는 WTO 분쟁해결 절차에서 이의 제기가 합당한지 검토할 때 쓰이는 잣대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WTO 협정에서 최혜국 대우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혜국 대우 의무는 가트 1조 1항에 나와 있다. 이는 같은 상품을 수출입 하는 과정에서 WTO 회원국들 사이에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최혜국 대우 의무 이외에 가장 위반 소지가 큰 조항은 11조 1항이다. 여기서는 WTO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는 사실상 수출제한 조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도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의 조치가 WTO 규범에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가트 10조 3항 위반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해관계자를 일관되게 대우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특정 국가로의 수출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과도한 신청서류 제출을 요구해도 이 조항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속적인 양자·다자 협의 요청을 통해 일본과 외교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의 공식 성명이나 인터뷰 등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WTO 제소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최종 승소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그사이 일본의 수출규제가 계속될 경우 한국 경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양국이 양자협의에 착수한 이후에 제소국이 패널 설치 요청서를 내면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 판정 절차가 진행된다. 1심 판정이 나올 때까지는 대략 12개월이 걸린다.

1심 결과에 불복하면 WTO 상소기구로 사건이 올라간다. 여기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통상 3~4년이 걸린다. 앞서 한·일 양국 간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 소송도 3년 가까이 걸렸다. 현재 상소기구가 신임 위원 선출 문제로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보다 시일이 더 소요될 수도 있다.

정부는 WTO 제소 결과에만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제소는 WTO 회원국에 관심을 촉구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전했다. “패널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에 승소 방향이 나오면 판정 전에 양국이 타협해 소송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4~5개월 만에 소송이 철회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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