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 시작만으로도 경쟁사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대를 막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제소 이후 이미 계약한 물량에 대한 공급 차질을 묻는 고객사의 문의가 잇따르는 등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이 향후 기술 유출 혐의를 벗더라도 소송전 기간만큼은 수주전에서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LG화학으로부터 제소당하면서 사업에 크고 작은 차질을 빚고 있다. 우선 이미 계약을 맺은 전기차업체들이 물량 공급에 차질이 없는지 문의가 잇따랐다. 일부 고객사들은 직접 한국을 찾을 정도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마음이 급한 것은 폭스바겐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부터 폭스바겐이 북미지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맡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공장도 건설하고 있다. 그러나 LG화학이 이 공장의 소재지인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 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제소하면서 향후 공장 가동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LG화학은 법원 소장에서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의 공급사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자사의 인력을 빼가 영업비밀을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이유로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전기차를 아예 판매할 수 없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업계에선 LG화학이 이번 소송전으로 폭스바겐의 배터리 자체 생산 시도에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 현지에선 폭스바겐이 SK이노베이션과 손잡고 독일 내에 배터리 셀 제조 JV(조인트벤처)를 설립할 것이란 보도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미지 타격을 입은 SK이노베이션은 향후 수주전에서도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완성차업체들의 전기차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수조원대를 쉽게 넘기는 대규모 배터리 수주전이 펼쳐지고 있다. 근시일 내에 폭스바겐그룹 산하 브랜드 아우디가 약 400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발주를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원에 달한다.
델라웨어 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결론이 나기까지 2~3년 걸릴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간 예고된 수주전에서 SK이노베이션은 소송 리스크를 안고 뛰어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배터리 사업에만 50억달러(6조원)에 달하는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했던 SK이노베이션은 사업의 명운이 이 소송전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CDRI 기업분쟁연구소장인 조우성 변호사는 “LG화학이 미국에서 소송전을 펼치는 이유는 소송 기간 자체가 우리나라에 비해 길어, 이 기간만큼은 추가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라며 “미국에서 소송전을 펼치면 뉴스의 크기가 커지고 SK이노베이션이 부도덕하다는 이미지를 더 강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북미 물량 수주에 실패하고 소송전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LG화학은 우선 눈엣가시이던 SK이노베이션의 성장을 차단하고, 인력 유출도 막는 1차 목표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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