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청국장, 어묵, 두부 등의 제조 시장에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소상공인 특별법)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소상공인과 대기업들은 소상공인 특별법의 제정 취지에 찬성한다면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연말 시행 전까지 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상공인들은 현재 적용 대상으로 꼽히는 업종 대부분이 소상공인과 무관한 분야라 보완 및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대기업은 자칫 소상공인 특별법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진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 소상공인 “특별법 환영하지만 현실 반영 못해”
29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소상공인 특별법의 우선 적용 대상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73개다. 전통떡, 청국장, 순대, 두부, 어묵, 햄버거빵, 단무지, 김치 등 식품 제조업이 주를 이루며 제과점 및 자전거 소매업 등 서비스업도 포함된다.
중기부는 소상공인단체가 생계형 적합업종을 선정해 요청하면 심의위원회를 거쳐 생계형 적합업종을 최종 선정한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은 대기업이 5년간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관련 매출액의 5% 이내로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소상공인들은 우선 특별법 제정을 환영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상공인 업종에 대한 대기업의 침탈을 막을 최소한의 보호막이 마련됐다”며 “특별법을 계기로 소상공인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업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선정할지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중론이다. 전통떡은 동네 떡집 등 소상공인이 영위하는 업종이 맞지만 김치, 두부, 어묵 등은 소상공인이 아닌 일반 제조기업들이 주로 하는 사업이라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선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은 대기업에 맡기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이자 소비자로서 위생이 확인되지 않은 작은 회사보다는 큰 기업에서 깨끗하게 만드는 식품이 낫다는 입장”이라며 “식품 제조업이 아닌 애견숍, 빨래방, 대리운전 등 정말 소상공인이 많이 진출한 업종이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수출길 막힐라 걱정하는 기업들
올해 말 소상공인 특별법이 시행되면 식품 제조 대기업인 CJ제일제당, 대상 등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수준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만 있을 뿐 설비 투자나 확장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대기업의 시장 견인 효과가 사라지면서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고추장, 된장 등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선정된 뒤 전체 시장 매출액이 20% 가까이 떨어졌다”며 “이는 식품제조회사의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치 산업 육성 및 한식 세계화 속도가 늦춰질 것이란 의견도 있다. 김치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위생적인 생산관리 시스템, 냉장유통망 등의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적극적인 연구개발(R&D)이 필수라는 지적이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출 시 필요한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 김치가 아닌 일본산 김치가 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시장 확장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과 일본 기업의 시장 잠식이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치의 경우 현재 국내 유통량의 30%를 차지하는 중국산 김치의 비중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대기업의 사업 확장이 소상공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를 막지는 않을 계획”이라며 “시행령을 다듬는 과정에서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소상공인의 실익 등을 감안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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