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빅3’ 유지-2만명 감원… 알맹이 빠진 경쟁력 강화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정부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案’]‘빅3’ 일단 유지… 알맹이 빠진 대책
업계에 떠넘긴 구조조정… 대우조선 매각도 차기 정부로

 《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살려 이른바 ‘조선 빅3’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들에게 일감을 주기 위해 공공선박을 조기 발주하고 선박펀드도 활용할 예정이다. 2020년까지 일감만 11조 원 규모를 발주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대신 조선 3사는 2018년까지 직영 인력 규모를 6만2000명에서 4만2000명으로 줄이고 현재 31개인 독을 24개로 감축하는 등 자구 노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에 정부는 사업 재편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을 밝혔다. 하지만 군살을 도려내는 구조조정 방안 치고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단 한 번도 대우조선해양을 정리하자는 논의를 한 적이 없다. 추가 지원은 하지 않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겠다.”

 정부는 31일 조선업 구조조정 내용 등을 담은 ‘조선·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으로 이뤄진 조선업 ‘빅3’ 체제를 흔드는 강력한 대책은 애초부터 어려웠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 대신 2020년까지 11조 원 규모의 일감을 주는 방식으로 어려움에 빠진 조선업을 살리고, 해운업에 대해서는 자본금 1조 원을 들여 사실상의 국영 회사를 설립해 해운사들의 배를 사 주겠다는 복안을 내놨다.

 이를 두고 6개월 넘는 논의 끝에 나온 대책치고는 알맹이가 없다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인력 감축 로드맵, 대우조선해양 매각 일정 등 조선업 구조조정의 핵심 대책은 빠지고, 실현 가능성에 의심이 드는 중장기적 체질 강화 방안만 백화점식으로 나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 업계에 떠넘긴 ‘구조조정’

 정부는 이날 내놓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보고서 28쪽 가운데 27쪽을 각종 지원책으로 채웠다. 이 가운데 2020년까지 11조20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공공선박 63척을 포함한 250척 이상의 선박 조기 발주를 추진한다는 게 핵심이다. 또 조선업 침체로 위기에 빠진 경남, 울산, 전남 등에 2020년까지 3조7000억 원 규모의 투자 및 융자를 제공할 뜻도 밝혔다.

 하지만 방안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기존에 발표했거나 업계에서 이미 추진 중인 내용이다.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율 제고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기준 25%인 국산화율을 4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개발(R&D), 인증, 표준화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해양수산부가 2014년에 내놓은 목표(2020년 국산화율 50% 달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경쟁력 강화의 핵심인 구조조정 방안 역시 각 회사가 내놓은 자구책 이행을 점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대우조선해양은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2018년까지 직영 인력의 41%(5500명)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유휴 독(3개) 가동 중단을, 삼성중공업은 비생산 자산(호텔, 선주 숙소 등)을 팔고 1조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할 뜻을 밝혔다. 올 6월에 나온 조선업 구조조정 추진 체계 개편 방안과 큰 차이가 없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구조조정은 고질적인 환부를 도려내야 하고 모든 이해 관계자들의 손실 분담을 설득해야 하는 고통스럽고 복잡한 과제”라며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대책을 환부를 도려내는 차원으로 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경쟁력 강화 방안이 ‘빅3’의 규모를 줄이라는 것에 그치는 등 핵심은 없이 과거 방안이 반복됐다”며 “소비·투자·생산이 일제히 침체를 보이는 상황에서 구조조정까지 더뎌지면 경제 체질 강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운업에 대해서는 지난해 말 12억 달러 규모로 설립한 선박펀드의 덩치를 24억 달러로 늘려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80%를 출자하는 1조 원 규모의 ‘한국선박회사’(가칭)를 설립해 부실 선사의 배를 인수하고 다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NYK, K라인, MOL 등 해운 3사가 31일 전격적으로 컨테이너선 사업을 통합하기로 했다. 한진해운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 빅3 체제 당분간 유지

 글로벌 컨설팅사인 매킨지의 보고서에 언급돼 논란이 됐던 ‘빅2’ 체제로의 전환 역시 사실상 무산됐다. 정부는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상선 등 경쟁력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효율화할 계획”이라며 현 체제를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채권단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대우조선에 대한 출자 전환 규모를 다음 주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3조 원 안팎의 출자 전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4조2000억 원 중 현재까지 3조2000억 원이 대출로 지원된 상태다. 향후 발생할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1조 원은 남겨 두고 자본 확충을 출자 전환 방식으로 진행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당국은 조선업황이 회복되는 시기에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민영화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며 “시장의 실질적인 상황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채권단 주도로 2018년까지 자구 계획을 추진한다는 점을 감안해 대우조선해양 매각 시기는 2018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시장을 보면서 최소한의 응급조치로 시간을 때우는 데 그쳤다”며 “결국 구조조정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강유현 기자
#구조조정#조선해운#대우조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