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어제 기존 주력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창조경제 산업에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80조 원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올해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바이오 헬스 유망 서비스산업 등에 72조4000억 원, 소프트웨어 게임 공연 등 문화산업에 7조2000억 원을 대출, 보증, 투자하는 지원책을 나열하면서 ‘창조금융’이라는 멋진 이름도 붙였다.
ICT와 기존 산업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을 향해 세계가 달려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책 방향 자체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술보증기금 같은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산업 지원은 과거 정권에서 ‘지정곡’처럼 불렀던 구태 정책이다. 김대중 정부의 정보기술(IT) 분야 중심의 벤처기업 육성부터 이명박 정부의 녹색기술 등 신성장동력산업, 박근혜 정부의 ‘확장적 거시정책을 위한 정책패키지’의 주된 재원도 정책금융에서 나왔다. 재정으로 직접 산업을 지원하려면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산업 보조금으로 인식돼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재를 받을 우려도 있어 정부는 정책자금에서 쉽게 꺼내다 썼다.
과거 개발연대 식의 정책자금 체계를 계속 끌고 온 결과, 2012년 말 한국의 연 정책금융 공급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3.2%)의 두 배를 넘는다. 지원 대상 선정에 정실주의, 실적주의, 모험 회피 경향 같은 고질병이 끼어들면서 정책금융은 ‘눈먼 돈’이 되고 지원 기업은 ‘좀비’가 돼 정책금융기관을 되레 부실하게 만든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김대중 정부 초기 퍼부은 벤처자금이 벤처거품을 일으키고 2000년 봄을 정점으로 붕괴돼 창조적 도전적 벤처정신도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다. 정부가 작년 업무보고에서 밝힌 중소, 벤처기업 대상 180조 원의 정책금융이 제대로 집행됐는지도 알 수 없다.
돈에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는 어제 정부가 밝힌 80조 원도 눈먼 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부실 지원 같은 문제를 일으킨 정책금융기관에 책임을 묻지 않으니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창조금융도 사업 시계열 보고서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해 투자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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