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제네시스 EQ900 탄생의 요람 ‘모하비시험장’을 가다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11월 24일 12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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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900, 모하비시험장서 지구 80바퀴를 돌아 완성했다”

너무 뜨겁고 건조해 생명이 살아가기 힘든 척박한 땅 모하비(Mohave) 사막. 미국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두 시간 가량 떨어진 이곳에 자동차가 내뿜는 굉음과 사막의 열기와 뒤섞인 곳이 있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쉽게 접근이 불가능한 현대기아자동차 모하비주행시험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기아차가 이곳을 시험장으로 선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보안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험장 인근에 에드워드 공군기지가 있어 더불어 이곳까지 경계가 강화되는 것. 실제로 이곳에서 드론 같은 작은 비행물체를 하나 띄우려고 해도 사전에 공군기지의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덕분에 현대기아차는 출시 전 신차를 위장막 없이 시험장에서 마음껏 테스트 할 수 있다.

현대차는 다음 달 출시되는 ‘EQ900’의 마지막 담금질을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 차는 현대차의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패를 가를 최상급 세단이다. 출시가 1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위장막을 걷지 않은 모습에서 현대차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자동차 시험을 위한 천혜의 환경 ‘모하비주행시험장’
모하비주행시험장(CPG, California Proving Ground)은 차량 시험에 있어 최적의 장소로 평가된다. 2005년 완공된 이곳의 면적은 약 1770만㎡(약 535만 평)로 영암 F1 서킷 면적의 9.5배, 여의도 면적의 6배에 달한다. 인공위성에서도 쉽게 식별될 정도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다.

가장 큰 시험로인 ‘고속주회로’는 총 길이가 10.3km로 국내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2배가 넘는다. 최고속도 200km/h로 한 바퀴를 도는데 약 3분이 걸린다.

시험장에는 고속주회로를 비롯해 ▲범용시험장 ▲장등판시험로 등 총 11개의 시험로가 있고, 모든 시험로를 연장하면 길이가 61km에 달한다. 미국에서 비슷한 규모의 주행시험장을 가진 업체는 GM, 포드, 도요타 정도가 있다.

시험장에서는 ▲승차감, 제동성능, 소음, 진동 등을 평가하는 ‘현지적합성시험’ ▲차량전복, 제동거리, 사고회피속도 등 미국 법규를 만족시키는지 평가하는 ‘북미법규시험’ ▲다양한 노면상태에서 차량상태를 평가하는 ‘내구시험’ ▲여러 부품들이 혹서의 환경에서 파손되는 정도를 측정하는 ‘재료환경시험’ 등을 수행한다.

이곳은 여름에는 무덥고 건조한 전형적인 사막 기후로 평균 온도 39℃에 지면 온도 54℃를 넘나드는 반면, 겨울철엔 평균 26℃의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때에 따라 비와 눈이 몰아치기 때문에 다양한 조건에서 차를 평가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시험장 북쪽의 ‘데쓰밸리(Death Valley)’는 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혹서의 자연환경에서 차량 내구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3년 출시된 2세대 제네시스(프로젝트명 DH)도 이곳에서 각종 평가를 거치며 완성됐다.

다음 달 국내를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시장에서 차례로 출시될 EQ900(이큐 나인헌드레드, 해외명 G90)는 독일, 일본 등 세계의 고급차 브랜드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진 제네시스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특명!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EQ900을 완성하라
지난 1월, 모하비주행시험장에 근무하는 50여 명의 연구원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EQ900의 미국 현지 테스트를 위한 첫 시험 차량 4대가 20일간의 먼 여정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후 연구원들은 지금까지 20대의 EQ900을 직접 몰아보며 내구, 주행 등 전 분야에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주목한 부분은 편안하고 역동적인 주행성능과 내구성, R&H 성능, 그리고 승차감 확보였다.

특히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 이후 첫차인 만큼 시험장에서는 역대 최고로 가혹했던 2세대 제네시스를 뛰어넘을 정도로 차량을 혹독하게 다뤘다.

내구성능시험은 보통 3~6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에 차량을 다양한 노면과 환경조건에서 쉼 없이 운행하고 다양한 지형이 포함된 구간을 얼마나 오랫동안 고장 없이 버티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반에서 경험하기 힘든 가혹한 수준으로 진행한다.

EQ900은 어떤 조건에서도 내구성을 달성하기 위해 ▲종합내구시험 ▲혹서내구시험 등 다양한 조건에서 시험을 거듭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알래스카에서도 혹한내구시험을 진행했다.

EQ900은 차량 1대당 종합내구시험 3만 마일, 혹한내구시험 2만 마일, 엔진 및 변속기 관련 파워트레인 내구시험 2만 마일, 외부 도로 주행시험 3만 마일 등 최소 10만 마일(약 16만1000km) 이상의 다양한 성능평가를 받았다.

시험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10.3km의 고속주회로를 최고속도 200km/h로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달리는 종합내구시험이다. 이 시험으로 고속 주행안정성 및 각종 차량 내구시험, 최고속도 시험 등의 동력성능 평가, 바람소리 시험 등 다양한 평가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EQ900은 고속주회로를 1대당 3만 마일, 무려 4800여 바퀴를 달렸다. 평가를 통해 얻어지는 각종 결과들은 차량을 완성하는데 참고자료로 쓰였다.

#쉼 없이 돌며 200km/h의 고속을 견뎌야
일반적으로 신차가 출시되면 고속주회로에서 혹독한 종합내구시험을 거치게 된다. 평균 3개월간 3만 마일에 걸쳐 시험로를 고속주행하면서 차량의 노화도를 측정한다.

이와 함께 11.4km의 오프로드 시험로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13개의 노면을 하나의 시험로로 구성한 내구시험로 평가도 병행한다.

특히 내구시험로 평가는 1만 마일 정도만 주행해도 10만 마일을 주행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정도로 가혹도가 심한데, 이 같은 평가를 통해 EQ900의 내구 성능을 한층 극대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 밖에 EQ900은 ▲데쓰밸리를 비롯한 실제 외부 도로에서 진행되는 내구시험 ▲혹한 혹서 등 다양한 조건에서 누적거리 200만 마일에 이르는 극한 내구시험평가를 거쳤다. 이는 지구를 80바퀴 돈 것과 같은 거리다.

#흔들림 없는 R&H 성능 완성
내구성 평가와 함께 최상의 R&H(Ride and Handling) 성능을 확보하기 위한 시험도 이어졌다.

EQ900은 쇽업소버 내부에 유압을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내장형 밸브를 적용해 어떤 도로 조건에서도 최적의 승차감을 유지하고 조종 안정성을 극대화시킨 신개념 서스펜션 HVCS(Hyundai Variable Control Suspension)를 최초로 탑재했다.

연구원들은 HVCS의 장점을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EQ900을 타고 ▲범용시험로 ▲승차감·소음시험로 ▲핸들링시험로 ▲고속주회로 ▲LA프리웨이 등 다양한 시험로를 반복 주행하며 성능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급격한 핸들링과 엔진,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성능을 집중 시험하는 곳이 바로 모하비주행시험장의 자랑이기도 한 핸들링시험로다. 시험로는 총길이 4.4km로 급커브 구간과 8% 경사 언덕 등으로 구성됐다. 이 시험로에서는 특히 고속으로 곡선구간에 진입한 뒤 다시 고속으로 빠져나가는 등의 한계 상황 주행 시험을 집중적으로 진행한다.

핸들링시험로에 이어 미국 시장에 최적화된 EQ900를 출시하기 위해 실제 LA에서 가장 흔한 도로 조건을 구현한 LA프리웨이에서의 R&H 담금질도 진행했다. 총길이 1.6km의 LA 프리웨이는 710번 도로, 10번 도로, 5번 도로 등 LA 프리웨이의 대표적인 세 도로 노면을 모사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EQ900는 미국 도로 특성에 좀 더 최적화 된 차량으로 거듭나게 됐다.

#비행기 일등석의 편안함을 만들어라
내구성, R&H와 함께 EQ900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완벽한 승차감 확보였다. 시험장에서는 북미의 다양한 노면을 구현한 시험로인 승차감 및 소음시험로를 중심으로 EQ900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일반적으로 도로는 국가별로 상이한 특징을 갖는데 유럽은 좁고 굴곡진 도로가 많고, 미국은 큰 폭의 직선도로에 표면이 아스팔트보다 거친 편이다. 우리나라는 가속방지턱이나 도로 연결부위와 같은 거친 도로가 많다.

EQ900는 이런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 거친 노면 재질, 방지턱, 요철, 깨진 도로 등과 같은 조건에서의 소음 및 진동 발생을 억제하고 차량의 안정성을 확보함으로써 승차감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시험장에는 1.2km의 쏠림시험로가 있다. 이곳에서는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주행한 다음 차선과 차선 사이에 표시된 노란 안내선을 얼마나 벗어났는지 즉청해 쏠림 정도를 확인한다. 승차감·소음시험로 평가 단계에서는 거친 노면을 지날 때 충격량을 최소화하면서 차량을 흔들림 없이 제어해 승차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듬었다.

이밖에 5.3km의 장등판시험로는 2%, 4%, 6%, 8%, 12% 등 서로 다른 5개의 경사도를 가진 시험로로 구성됐다. 국내의 남양연구소에는 없고 이곳에만 있는 장등판시험로에서는 파워트레인 등판성능 및 오토크루즈 성능 시험이 진행된다.

실제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오르막길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아래로 한없이 뻗어 있는 내리막길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길을 주행할 때 차량은 높은 부하를 받게 되므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파워트레인 등판 성능과 오토크루즈 성능이 중요시 된다. 장등판시험로에서는 바로 EQ900의 파워트레인 등판 성능 및 오토크루즈 성능 시험이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BMW, 벤츠, 렉서스에 도전장 던진 ‘제네시스’ 결과는?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하며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동안 BMW, 벤츠, 렉서스, 아우디 등 독일, 일본 고급차 업체들이 장악해 온 고급차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모든 고급차 브랜드들이 진출해 있는 핵심 지역이기 때문에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의 성패는 브랜드의 운명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업체들은 까다로운 미국 시장 환경에 맞춰 최상의 품질 및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높은 기술 수준과 상품성이 요구되는 곳이 바로 미국 시장이기에 ‘미국에서 통하면 전 세계에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 세계 최대 고급차 시장인 미국 환경에 맞춘 다양한 차량 적합성 평가가 이뤄지는 이 곳 모하비주행시험장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런 모하비주행시험장에서 다양하고 혹독한 평가를 통해 완성된 EQ900의 경쟁력이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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