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눈]문화를 파는 샤넬 vs 매출 조급증 K-백

  • 동아일보

김현수 기자
김현수 기자
이번 추석 연휴에 패션업계 인사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의 대규모 전시회다. 지난달 30일 시작해 10월 5일까지 열리는 ‘문화 샤넬전: 장소의 정신’은 샤넬의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 여사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장소를 주제로 샤넬의 대표 패션, 향수, 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녀가 살던 프랑스 파리 캉봉 가의 아파트 조도까지 재현할 만큼 꼼꼼하게 샤넬 여사의 삶과 패션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입장료는 공짜다.

지난달 29일 서울을 찾은 전시 큐레이터 장루이 프로망 씨는 “브랜드의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샤넬의 원천이자 예술성”이라고 말했다. 전시 장소도 같은 맥락에서 ‘괴기스럽다’, ‘미래적이다’는 상반된 평가로 논란의 중심에 선 DDP를 선정했다. 금기에 도전하고 자유로움을 찾은 면이 비슷하다는 것.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창업자를 동경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샤넬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샤넬의 브랜드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는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한국판 명품 핸드백 ‘K-백’을 돌아보게 했다. 대기업이 고급 핸드백을 내놓으면서 외형성장에 집중하느라 명품의 핵심 요소인 브랜드 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의 한섬, 코오롱인더스트리, SK네트웍스 등이 내놓는 가방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관광객까지 끌어모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매출 목표는 밝혀도 브랜드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전무하다. 유명 연예인만 앞세우는 곳도 있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사업부별 매출 성과에 따라 부서장의 인사가 좌지우지되는 대기업 시스템에서 브랜드 관리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품을 ‘예술품’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없다면 한국판 명품의 탄생은 불가능할 거라는 게 패션업계의 중론이다.

이 가운데 독특한 행보를 하는 중견기업이 있다. 2012년 핸드백박물관을 만들고 ‘가방의 소리’, ‘여자의 가방’ 등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는 가방제조회사 시몬느다. 2015년에 브랜드 ‘0914’를 론칭하기 위해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지난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의 무게를 돈으로 사려는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를 키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투자 여력을 갖춘 대기업들도 당장의 매출 목표보다 ‘브랜드의 문화지수’를 목표로 삼는 것을 고려해 볼 때가 됐다.

김현수·소비자경제부 kimhs@donga.com
#문화#샤넬#핸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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