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장 찍어내기 vs 버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금감원, 제재내용 전격 공개 압박… 내부통제 시스템 전면조사 방침도
일각 “김승유 前회장 겨냥 대리징계”… “관치금융 폐해 다시 도지나” 우려도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 투자를 이유로 ‘문책 경고’를 내린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징계 내용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 김 행장의 사퇴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중징계 결정을 내리면 사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했던 김 행장이 “당시 투자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며 임기가 끝날 때까지 행장 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17일 열린 김 행장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 결정 내용을 22일 홈페이지에 전격 공개했다. 결정 내용에는 김 행장이 2011년 9월 하나캐피탈 사장으로 재직하며 당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요청을 받고 부동산과 주식, 그림을 담보로 미래저축은행에 대한 145억 원의 지분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돼 있다.

이 과정에서 김 행장이 저축은행의 경영 상태나 자구 계획, 담보물에 대한 심사 평가를 부실하게 진행해 59억5200만 원의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중징계를 받으면 앞으로 3∼5년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되지만 은행장으로서 남은 임기를 채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 금감원은 김 행장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까지 포함한 하나금융 전반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조사를 벌일 계획까지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사퇴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금융권에서는 금융사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관치(官治) 금융’이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행장의 징계 사유인 저축은행 투자는 2012, 2013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차례나 금융당국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특히 지난해에는 금감원이 같은 건으로 김 행장에게 경징계를 내리려다 금융위원회가 재검토를 요구해 재검사를 하고 징계 수위를 높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금융계에서는 금융당국의 반복된 조사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꼽힌 김승유 전 회장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김 행장에 대한 징계는 이미 금융계를 은퇴한 김 전 회장의 ‘대리 징계’ 성격이 강하다”며 “김 행장이 적법하게 임기를 채우겠다는데 사퇴 압박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들이 금융당국의 사퇴 압박을 버틴 전례는 거의 없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의 대결 구도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다”며 “김 행장은 기존에 발표한 대로 조용히 맡은 임기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행장은 이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이상훈 기자
#금융감독원#하나은행장#김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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