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진석 기자의 Car in the Film]니키와 제임스, 이런 라이벌이 있었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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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 러시 더 라이벌

1976년. 동시대를 살았든, 아니면 기록 속에서만 찾아봤든 모터스포츠 팬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해입니다. 해마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세계 최고의 레이스대회 포뮬러원(F1)의 63년 역사 속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명승부가 펼쳐진 때였으니까요.

페라리의 레이서 니키 라우다(64·오스트리아)는 1976년 F1 독일 그랑프리에서 빗속을 달리다 참혹한 사고를 당합니다. 가파른 코너링 구간에서 미끄러져 벽을 들이받은 차는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니키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구급차에 실려 갑니다. 맥라렌 팀의 제임스 헌트(1947∼1993·영국)는 인생 최고의 라이벌이 생사의 위기에 놓인 모습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당시 F1은 미처 안전 대책이 수립되지 않아 경기 중 사망하는 선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서킷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니키는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인 42일 만에 이탈리아 그랑프리에 출전해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그해 마지막 그랑프리가 열린 일본 후지스피드웨이까지 두 맞수는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입니다.

제임스에게 니키는 말합니다. “생사의 고비를 오가던 중 TV에서 네가 달리는 모습을 봤어. 내가 다시 운전대를 잡게 만든 건 너야.”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 실화는 최근 론 하워드 감독이 선보인 영화 ‘러시 더 라이벌’을 통해 재현되어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스 치머의 OST보다도 호쾌한 F1 엔진소리를 들으며 두 레이싱 영웅의 섬광 같던 삶을 스크린에서나마 보고 있자니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더군요.

당사자에게도, 경쟁을 지켜보는 이에게도 라이벌이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진정한 라이벌은 서로의 삶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주는 존재라고 하지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는 몰라도, 그런 라이벌을 꼭 한 번쯤은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F1은 4년 연속 세계 챔피언을 노리는 제바스티안 페텔(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어서 재미가 영….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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