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젖먹던 힘까지… ‘바꿔줘’ 마케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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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모유수유에 정체기 맞은 분유회사… ‘고객 빼오기’ 경쟁

“한 스푼이라도 남은 다른 회사 분유통을 보내주시면 우리 회사 분유 한 통을 보내 드릴게요. 아기가 새 분유에 잘 적응하면 갖고 있는 모든 분유를 바꿔 드려요.”

저출산 분위기와 모유 수유 장려로 위축되고 있는 분유 시장에 ‘한 스푼 마케팅’이라는 신(新)풍속도가 등장했다. 일부 분유업체가 엄마들에게 먹고 남은 경쟁사 분유를 보내주면 자사(自社)의 새 제품(800g)으로 바꿔주겠다며 판촉 전쟁을 벌이고 있다.

○ “새 분유 줄게, 헌 분유 다오”

지난해 8월 딸을 낳은 김모 씨(27)는 최근 분유업체 A사 상담원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김 씨가 “B사 분유와 모유를 혼합 수유하고 있다”고 하자 상담원은 “B사 제품은 최근 리뉴얼을 하면서 값이 많이 뛰었고 단맛도 많이 난다. 먹다 남은 분유를 보내 주면 새 분유 한 통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김 씨가 분유통에 분유가 얼마나 남아 있어야 하는지 묻자 “거의 다 먹었더라도 상관없다. 남은 분유 대부분을 다른 데 덜어둔 다음 분유통을 보내주면 된다”고 말했다. 상담원은 “아이가 잘 적응하면 남은 모든 분유를 A사 제품으로 바꿔주겠다”고도 했다. 분유를 받는 방법도 어렵지 않았다. 주소만 말해주면 택배기사가 새 분유를 건네주고 경쟁사의 분유통을 수거해 간다.

상담원은 분유를 바꿔 먹이는 방법도 친절히 설명했다. 경쟁사 분유와 자사 분유 혼합 비율을 7 대 3에서 시작해 이틀째는 5 대 5, 3일째에는 3 대 7의 비율로 조금씩 높여 가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 육아정보 사이트에는 ‘헌 분유에서 새 분유로 바꾸기’에 대해 묻고 대답한 글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3세 아들을 둔 이모 씨(34)는 “한 스푼밖에 안 남은 분유통도 친절하게 바꿔줬다”며 “A사뿐만 아니라 C사도 분유 바꾸기 프로그램이 있다”고 전했다.

‘한 스푼 마케팅’은 한 푼이 아쉬운 엄마들에게는 상당히 솔깃한 제안이다. 프리미엄 분유는 한 통에 4만∼5만 원이고 일반 분유도 한 통에 2만5000원이 넘을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분유 갈아타기’는 쉽게 이뤄진다. 대부분의 엄마가 처음 분유를 선택할 때도 특별한 기준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분유업체의 마케팅 지원을 받은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이 추천하는 대로 먹였기 때문에 특정 분유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 씨도 산부인과에서 퇴원하면서 B사 분유(800g) 2통을 선물로 받아 아이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 시장 감소-필사적 경쟁

분유업계의 경쟁은 분유 소비량이 감소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유가공협회에 따르면 2011년 조제분유 소비량은 1만3786t으로 10년 전인 2001년(2만9855t)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국내 분유시장 매출 규모는 2000년 3000억 원을 돌파했다. 소비는 줄고 있지만 업계가 제품을 고급화하며 가격을 올려 분유시장 규모는 지난해 3500억 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가격 인상에 제동이 걸려 분유업계의 판촉 활동이 더욱 가열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분유시장은 남양유업 매일유업 일동후디스 파스퇴르 등 4개 업체가 98.5%(2009년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차지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약 50%, 매일유업이 25% 정도로 두 회사 제품이 전체 판매량의 75%가량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 스푼 마케팅’ 외에도 분유업계는 엄마들에게 선택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우선 육아 사이트를 개설하고 출산육아교실을 운영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남양유업의 ‘임신육아교실’은 연간 300회 이상 열리며 15만 명이 참석한다. 매일유업도 ‘매일 예비맘 스쿨’을 개최하고 있다. 업계는 예비 엄마들에게 ‘기저귀, 물티슈, 아기 목욕 샴푸, 분유’ 등 샘플을 줄 뿐 아니라 유모차 등을 경품으로 내놓을 정도로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마트에 상주하는 분유업체 직원들은 엄마에게 은밀히 접근해 아기 과자 등을 선물로 주며 분유 갈아타기를 권유한다.

아기의 첫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첫 분유로 선정되는 게 향후 매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출혈을 무릅쓰고라도 1단계 분유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한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상대로 분유를 독점 공급하기 위해 로비를 벌이다가 적발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단계별로 먹이게 돼 있는 분유 가격도 1단계 제품이 제일 싸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600∼900원씩 가격이 올라간다. 한 분유업체 관계자는 “원료 성분 차이를 가격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분유업체 관계자는 “제품 단계별로 영양 차이는 크게 없지만 특별히 값을 내릴 이유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분유#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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