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해지 왜 어려운가 했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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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상품 팔아놓고는 철회요구엔 “직접 방문하라”
20개월새 민원 684건 접수… 당국,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

부산에 사는 김모 씨(42)는 올해 1월 평소 거래하던 은행 직원의 권유로 연금저축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상품에 가입했다는 생각에 일주일 뒤 전화로 가입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자 직원은 전화로 가입할 때와는 달리 철회는 지점을 방문해 청약철회서를 직접 작성해야만 해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김 씨는 며칠이 지난 뒤 지점을 찾기 위해 해당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는 직원으로부터 “가입 철회 기간인 15일이 지나 상품 해지가 안 된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인천에 사는 최모 씨(33)도 올해 2월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투자할 저축상품을 찾던 최 씨는 보험이 아닌 복리 저축상품이고 최 씨가 사용하던 신용카드 고객에만 판매하는 특별상품이라는 상담원의 설명에 이끌려 가입을 결정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인터넷에서 보험약관을 확인한 결과 그가 가입한 상품은 설명과 달리 상해보장 등이 포함된 저축성 보험이었다. 이에 해당 회사에 해지를 요구하자 상담원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최 씨는 결국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고 해당 회사는 마지못해 보험 가입을 철회해줬다.

보험회사들이 상품 가입 때와 가입 철회 때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23일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상품의 해지와 관련된 민원은 지난해 초부터 올해 8월까지 684건에 달했다.

금융당국이 ‘쿨링오프’ 제도를 도입했지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시간을 끌거나 고객을 번거롭게 하는 등 계약 철회에 소극적이었다.

관련법에 따르면 기간 내 계약 철회를 지연시키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보험업법은 통신수단을 이용해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통신수단으로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때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계약도 고객이 원하면 15일, 30일 등 기간 내에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런 민원들은 접수되면 대부분 보험사가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민원이 제기될 때까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이런 보험사의 행태에 적극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금감원에 민원이 제기되면 민원 평가에 반영돼 공개되지만 보험사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과태료도 2000만 원 이하에 불과해 보험사들은 ‘과태료를 내면 그만’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보험사들이 법과 규정을 잘 지키도록 행정지도하는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검사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적발 작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쿨링오프(cooling off) ::

지점이나 보험설계사 등을 통해 가입하면 15일, 전화 인터넷 등 통신수단으로 가입하면 30일간의 숙려(熟慮) 기간을 둬 가입자가 충분히 고민한 뒤 손해 없이 계약을 철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보험해지#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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