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삶의 방향성 설정까지 멘토를 갈구하는 이가 늘어나면서 ‘멘토 마케팅’이 인기다. 멘토가 심리상담을 해주는 카페(위), 전문가의 조언과 함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리조트 등도 생기고 있다. 각 업체 제공
불황의 시대 ‘멘토 마케팅’이 주목받고 있다. 장기화되는 경기 침체로 소비심리가 어느 때보다 얼어붙고 있지만, 산업계 전반에서 ‘멘토’를 내세운 상품들은 전에 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불확실한 시대인 만큼 삶의 방향성에서부터 생활 전반의 소소한 선택까지 멘토의 팁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지만, 불안함을 지나치게 활용한 감정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믿을 만한 조언 받고 싶어하는 욕구”
최근 서울 홍익대 앞, 강남역 부근 등 트렌드 세터들이 찾는 지역에서 심리 치유를 내세운 카페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마포구 서교동 카페 ‘멘토’에서는 커피를 마시면서 에니어그램(성격유형분석) 검사를 받고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검사까지 받는 패키지는 1만5000원. 20, 30대 손님이 주를 이루지만 청소년이나 40, 50대 장년층도 10∼20% 정도 차지한다. 컬러 세러피 등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빔’,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 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카페 ‘훗’ 등도 비슷한 사례다. 김화숙 멘토 대표는 “스트레스에 고민을 떠안고 있지만 마땅히 털어놓을 만한 멘토가 없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며 “진로, 직장 문제, 인간관계 등 고민의 내용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행하다 최근 국내에 도입된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의 인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전문 업체에 매달 일정 요금을 내면 화장품부터 육아용품이나 건강식품, 공연 티켓 같은 문화상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해당 분야 전문 상품기획자(MD)가 선별한 뒤 배송해 준다. 자신의 취향이나 성향 등을 잘 아는 전문가가 일종의 ‘쇼핑 멘토’ 구실을 해 주는 것이다.
강현지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런 상품이 등장하는 것은 정보와 상품이 넘쳐 나는 시대에 진심 어리고 믿을 만한 누군가의 조언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불안한 대중 활용한 ‘감정자본주의’ 지적도
일러스트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여행이나 출판·문화 산업에서도 멘토 마케팅 열풍은 거세다. 최근에는 관광 가이드 대신 심리치료사가 동행하는 여행 상품도 등장했다.
여행업체 노매드는 관광이 아니라 심신치유 프로그램 중심의 인도, 티베트 등 여행상품을 판매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전문가의 상담이나 치유를 테마로 내세운 리조트도 등장했다. 충북 제천에 최근 문을 연 리솜리조트는 리조트 내에 마련된 숲에서 숲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지역 역사 강의, 명상 및 삼림욕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올 초만 해도 진보논객들의 저서가 휩쓸던 출판업계에서도 혜민 법륜 정목 스님 등이 쓴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멘토 마케팅’ 열풍이 불황, 불안, 불확실 등 이른바 ‘3불’ 시대가 낳은 자연스러운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물질적 욕망, 직업적 성공이란 목표가 분명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 한국인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고 진단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며 의존하게 되는 건 사회 관계가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확대된 현대사회의 특성 중 하나기 때문에 이런 트렌드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불안이나 의존심리 등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선 비판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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