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광물자원공사 등 한국컨소시엄과 합작회사를 세워 리튬이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기로 한 볼리비아 측이 막판 어깃장을 놓은 것이었다. 김 사장은 일단 LG상사 등 한국컨소시엄 참여회사들에 연락해 모든 협상권을 위임받았다.
같은 시각 독일 출장을 마치고 페루 리마에서 라파스로 향하려던 권오준 포스코 사장도 실무자의 다급한 보고를 받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오전 2시 호텔에 도착한 권 사장은 짐도 풀기 전에 김 사장과 머리를 맞댔다. “요구를 들어줍시다. 그 대신 합작회사 설립자금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별도의 은행계좌를 만들어 각각 관리해야 한다는 조건은 관철해야 합니다.”
수차례의 실무협상 끝에 다시 합의를 이끌어낸 한국컨소시엄의 대표들은 5일 오전 9시 반 볼리비아 광업부장관실에 앉았다. 이제 30분 뒤면 본계약서에 서명할 터였다. 이렇게 되면 양극재 생산뿐 아니라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호수에 묻힌 약 540만 t의 리튬을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된다. 리튬은 휴대전화, 노트북에 들어가는 2차전지에 필수적인 희소자원으로, 앞으로 전기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몸값이 크게 뛸 수밖에 없어 중국 일본 프랑스 등도 일찌감치 눈독을 들여왔다.
9시 45분, 장관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김 사장과 권 사장에게 비보(悲報)가 전해졌다. “볼리비아 측이 포스코의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로열티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본계약서에서 빼자고 합니다.”
순간 권 사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기술을 사용하는데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차라리 서명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밀고 당기는 협상이 계속됐다. 로열티 지급 내용을 별도의 합의서에 명시하기로 하고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최종 사인을 할 수 있었다. 볼리비아 측의 무리한 요구에도 5∼10년 뒤를 내다보고 38시간 동안 피 말리는 마라톤협상을 벌인 결과물이었다.
2008년 7월 광물자원공사 사장에 부임하자마자 리튬 확보를 지시한 김 사장은 감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한국이 경쟁국들을 제치고 볼리비아 리튬사업에서 한발 앞서가게 된 배경으로 소금물에 녹아 있는 탄산리튬을 빠르게 추출할 수 있는 포스코의 우수한 기술력과 삼성SDI, LG화학 등 양극재를 사줄 수 있는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점이 꼽힌다. 마리오 이포레 볼리비아 광업부 장관은 조인식 직후 “무엇보다 광물자원공사 등 한국컨소시엄의 적극적이고 빠른 추진력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계약에 따라 한국컨소시엄과 볼리비아 코미볼은 각각 50%의 지분으로 240만 달러(약 27억3600만 원)를 투자해 양극재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를 세운다. 한국 측 지분은 포스코가 26%, 나머지 24%는 광물자원공사(9%), LG상사(5%), 경동(5%), 유니온(3%), 아주산업(2%)이 갖는다.
볼리비아 코미볼은 합작회사에 양극재 원료인 탄산리튬 등을 공급하고, 한국 측은 포스코 자회사인 ESM의 기술을 이용해 2013년 말까지 양극재 시제품을 만들 예정이다. 이성원 포스코 리튬소재추진반 팀장은 “시제품을 생산한 뒤 2014년부터 투자 규모를 늘려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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