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인용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일 2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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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띄운 시가 화제다. 박 장관은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오늘 만큼은 시 한편을 음미하자"며 이상국 시인의 '오늘은 집에 일찍 가자'를 인용했다. 매일 늦게 퇴근하는 화자(話子)가 자신을 반성하면서 아내와 밥을 먹고 아이와 장난칠 수 있는 여유를 갖자는 내용의 시다.

딱딱한 정책과 숫자에 파묻혀 사는 재정부 직원들에게 박 장관의 시 한 수는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보통 정부 부처 장관들이 보내는 편지는 A4용지 4~5장의 장문에 평소에는 접하기도 힘들고 내용도 뻔한 고사성어나 중국 고전, 외국 시 등으로 채워지곤 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이 날 752자의 짧은 편지에 3분의 1은 시로 채우고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_^"라고 웃는 얼굴 이모티콘까지 넣어 편지를 마쳤다.

재정부 관계자는 "취임 1주년이라고 근엄한 내용을 담아봐야 직원들이 읽어보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장관이 직접 시를 골라 쉽게 편지를 썼다"고 설명했다. 재정부는 5월부터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 근무제를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실시하고 매주 수요일, 금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해 조기 퇴근을 독려하고 있다.

한편 박 장관은 편지에서 "글로벌 재정위기, 물가, 일자리, 가계부채, 신용등급, 재정건전성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는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고 지난 1년을 회고했다. 이어 "여러분의 물샐 틈 없는 수비 덕분에 대량 실점 없이 공수 교대를 기다리며 승리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며 "위기 다음에는 어김없이 기회가 찾아오니 그 때를 위해 착실히 내공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 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히며 저녁을 먹자

- 이상국 작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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