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일렉의 박선후 세탁기사업부장(왼쪽)과 백기호 냉기사업부장이 올해 출시한 벽걸이형 드럼세탁기와 3도어 대용량 냉장고 앞에서 성공을 자신하며 주먹을 꽉 쥐어 보이고 있다. 대우일렉 제공
“기본을 지키겠다는 원칙은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탱크주의’ 정신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백기호 대우일렉 냉기사업부장·상무)
“다른 회사는 신제품 10개 중 하나만 인기를 얻어도 성공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를 내놓더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박선후 대우일렉 세탁기사업부장·상무)
대우일렉은 14년째 워크아웃 중이지만, 이 같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흑자를 내며 재도약하고 있다. 올해는 세계 최초로 3도어 방식을 채용한 대용량 냉장고 ‘큐브’와 역시 세계 최초로 벽걸이형 방식의 드럼세탁기 ‘미니’를 야심 차게 내놓았다. 두 제품 개발의 주역인 백 상무와 박 상무에게 28년 근무기간의 절반을 ‘주인 없는 회사’에서 지낸 스토리를 들어봤다.
○ 한때 꿈의 직장, 대우전자
두 사람은 1984년 나란히 대우전자(현 대우일렉)에 입사했다. 당시 공대 졸업생에게 취업 걱정은 남의 얘기였다. 각각 인하대 기계공학과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이들은 다른 기업들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대우를 선택했다. 백 상무는 “대우는 재계 3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었고 특히 대우전자는 세계화의 첨병(尖兵)으로, 세계무대를 주름잡겠다는 열망과 꿈이 가득했던 곳”이라고 회고했다. 신입사원들의 열정만큼이나 회사도 직원들에게 많은 기회를 보장했다.
이러한 회사 분위기는 1990년대 인기 상품을 내놓는 원동력이 됐다. ‘탱크 냉장고’와 ‘공기방울 세탁기’는 당시 가전시장을 휩쓸었다. 아직도 국내 소비자들이 대우전자를 떠올리면 함께 따라오는 ‘탱크주의’라는 광고 문구가 나온 것도 이때였다. 박 상무는 “시장이 대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며 “세계 어느 곳을 가든 ‘가전 명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 1990년대 말 찾아온 위기
1998년 찾아온 모(母)그룹의 위기는 잘나가던 대우전자까지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듬해 대우전자를 포함한 그룹 내 12개 계열사는 워크아웃 기업으로 지정됐다. 회사는 2001년 반도체부문을 비롯해 무선중계기, 방위산업 등 비주력사업을 다른 업체에 넘겼다.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박 상무는 연구원들을 다독거리며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박 상무는 “이때 나온 무세제 세탁기와 드럼 업 세탁기는 기술 제휴를 전혀 받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며 만들어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백 상무에겐 폴란드 법인을 철수시키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2003년 1월 현지를 찾은 그는 마음을 바꿔 먹고 시장 살리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3.5%이던 시장점유율은 1년도 안 돼 17.5%까지 올랐다. 백 상무는 “좋은 시장을 그냥 버려둘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 “혼과 정신으로 ‘명가 부활’ 이끌 것”
1999년 1만2000여 명이던 직원은 이제 9분의 1 수준인 1450명으로 줄어들었다. 밖에서는 ‘차와 포를 떼어낸 회사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수군거렸다. 세 차례에 걸친 매각작업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여전히 패배감보다 자신감이 더 높다. 이번에 내놓은 큐브와 미니는 그 자신감과 열정의 결과물이다. 백 상무는 “이번 제품이 인기를 얻어 현지에 생산기지도 만들고, 과거 대우의 네트워크도 꼭 부활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상무도 “고객들이 혼과 정신이 담긴 우리 제품을 찾아준다면 ‘가전 명가’의 부활은 곧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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