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사나이’ 박태준 1927~2011]‘知日- 用日- 克日’ 신조 지킨 대한민국 일본통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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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때 건너가 학업 ‘知日’
박정희 특사 파견되며 ‘用日’
日도움 받은 포철 키워 ‘克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일생을 조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본’과의 인연이다.

박 명예회장은 여섯 살 때인 1933년 가을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시즈오카 현 아다미 시의 철도 터널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다. 식민지의 소년이었던 박 명예회장은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다.

박 명예회장은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5년 8·15 광복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63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1964년 박정희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파견되면서 평생에 걸쳐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 막후 접촉을 위해 무려 10개월 동안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일본 열도를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최대 제철소인 야하타 제철(현 신일본제철)의 회장이자 일본철강연맹 회장이었던 이나야마 요시히로 사장 등과 인연을 맺었다.

박 명예회장은 이나야마 사장 등 일본 재계 핵심 인사들과 쌓은 두터운 친분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와 철강업계를 설득해 1969년 포항제철이 일본으로부터 대일청구권 자금을 끌어다 공장을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일파 경영인이었던 그는 1981년 한일경제협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은 일본 정계 인사들과도 인연이 깊었다. 그는 일본의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등과 1970년대부터 탄탄한 우정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박 명예회장은 1988년 한일의원연맹 한국 대표로 일하면서 일본 정계에서의 인맥을 바탕으로 일본으로부터 40억 달러의 경협자금을 받아 오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은 언제나 “(한국을 발전시키려면) 일본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일본을 ‘알고, 활용하고, 넘어서는(知日·用日·克日)’ 3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이날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전직 총리들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한 달 전에 도쿄에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와 함께 만났을 때 ‘괜찮다’고 했는데 오늘 돌아가셨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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