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규모 1조5000억 미만 업종엔 대기업 진입 규제 추진… 고추장은 中企? 금형은 대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3일 03시 00분


■ 동반성장委 가이드라인 논란

앞으로 고추장이나 연두부, 재생 타이어 등에서 대기업 상품이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2일 공청회를 열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품목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최근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로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이 악화됐다는 지적에 따라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든 것으로,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사실상 5년 만에 부활하는 셈이다. 가이드라인은 29일 동반성장위 전체회의에서 확정된다.

이날 동반성장위가 밝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적합한 품목으로 지정될 수 있는 시장규모(출하량 기준)는 1000억∼1조5000억 원으로 정해졌다. 또 참여하는 중소기업 수가 10개 미만인 품목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를 통해 대상 품목을 1차로 걸러낸 뒤 △해당 품목 전체 종업원 수에서 중소기업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 △대기업이 제외되더라도 품질 등 소비자 만족도가 유지되는지 등을 고려해 적합한 품목을 가려낸다. 중소기업 적합 품목으로 지정되면 기본 3년에, 한 차례 연장해 최대 6년간 보호받을 수 있다. 정부는 세제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와 함께 동반성장지수 점수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대기업이 중기 적합 품목에 진입하는 것을 자제하거나 사업을 넘기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아직 가이드라인 초안만 나온 상태지만 산업계는 이 제도가 시행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업종이나 품목이 규제 대상이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200여 개 품목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사업규모로 볼 때 전기전자나 자동차 같은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보다는 고추장, 연두부 등 식품과 유통 분야가 많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식품 및 유통 대기업들은 이날 가이드라인 초안 발표로 비상이 걸렸다. 한 식품 대기업 관계자는 “장류는 이미 우리의 핵심 품목인데 이제 와서 진입을 제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대기업이 장류 수출과 한식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규모가 연간 4000억 원에 이르는 고추장 시장은 CJ제일제당과 대상이 90%를 점유하고 있다. 된장과 간장을 포함한 장류는 시장 규모가 1조 원으로 추정되며 연두부 등 연식품류는 5000억 원 규모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지난해 대기업슈퍼마켓(SSM) 논란에서 볼 수 있듯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 폐지 이후 대기업의 무차별적 사업 확장이 심각해졌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두부산업은 제조업체가 한때 188개에 이르렀으나, 2006년 중기 고유업종제가 폐지된 뒤 본격적으로 대기업들이 진출해 제조업체가 66개로 확 줄었다. 이 때문에 중기중앙회는 이날 “가이드라인 규제 대상을 정부가 제시한 시장규모 1000억∼1조5000억 원보다 확대해 500억∼3조 원으로 넓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 중소 금형업체 대표는 “금형이나 주조산업은 대기업 납품에 의존해 온 전형적인 하도급 구조이지만 시장 규모가 1조5000억 원이 넘기 때문에 현 가이드라인대로라면 중기 적합 품목제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가 보호를 주장해온 금형, 주조 등 ‘뿌리산업’도 시장규모가 연간 5조∼6조 원으로, 중소기업 적합 품목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동반성장위원회의 규제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근로자 수 300∼999명인 중견기업을 중소기업에 포함시켜야 할지 등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