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남 사천시 사남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 만난 박노선 KAI 수출본부장은 날짜 이야기부터 꺼냈다. 160일은 그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인도네시아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자 선정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우선협상대상 선정 통보를 받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박 본부장은 “주변에서 ‘되긴 되냐’ ‘희망적이라는데 언제 되냐’라고 자꾸 물어보는 통에 정말 속이 말도 못하게 타들어갔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온 낭보로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T-50)는 첫 번째 해외 비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출범 12년을 맞은 KAI의 진정한 봄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 생산물량 2배로
이날 KAI 본사에서는 정작 주인공인 T-50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행기의 최종 조립 작업이 이뤄지는 축구장 2개 크기의 항공동에서는 T-50의 후속 기종인 TA-50의 조립 작업이 한창이었다. KAI 측은 “T-50의 생산은 인도네시아와의 본계약이 이뤄지는 대로 곧바로 시작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AI의 각 부서는 인도네시아 하늘을 날게 될 T-50 생산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전 임직원이 창사 이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우선 생산본부는 대대적인 생산체계 개편에 착수했다. 32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T-50은 생산을 시작해 시험 비행을 마치고 최종 납품하기까지는 통상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KAI의 월평균 생산 능력은 1.2∼1.5대가량. 그러나 당장 16대의 T-50을 인도네시아에 납품하려면 생산 능력을 2배 수준인 월 3대로 늘려야만 한다. 이동현 생산본부 항공기생산담당은 “생산 소요 시간을 1년에서 10개월 미만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설계본부는 인도네시아의 1차 요구 사항에 따른 설계도면 작업을 시작했다. 유사시 무기 장착 여부, 조종석 버튼 배열 등 설계단계에서부터 수정해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출본부 소속 11명의 직원은 이날 최종 계약서 조율 및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이제부터가 시작
이에 앞서 KAI는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에서 두 번의 고배를 들었다. 박 본부장은 “록히드마틴도 F-16을 처음으로 팔기까지 4번의 좌절을 겪었다”며 “이제 첫 물꼬를 튼 만큼 앞으로 추가 수출이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현재 KAI는 이스라엘, 폴란드와도 T-50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KAI가 추가 수출을 자신하는 것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공군이 있기 때문이다. KAI 측은 “‘T-50이 좋다’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우리 공군이 인도네시아 공군에 T-50 비행자료를 전달해준 것이 몇 배나 효과적이었다”며 “공군에서 T-50을 실제로 운영하며 여러 가지 보완 사항을 찾아 고쳤고, 이는 T-50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첫 수출이 성사되면서 KAI 사천 본사의 냉랭했던 공기도 사라졌다. 이날 구내식당에서는 ‘떡 잔치’가 벌어졌다. 수출본부가 인도네시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기념해 돌린 떡이다. 이날 KAI 본사에서 만난 직원들은 한결같이 “정말 바쁘고, 앞으로 더 바빠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표정은 밝았다. 김홍경 사장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회사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외부로부터의 질책과 우리 스스로의 내부적 위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KAI 측은 “우선은 인도네시아와의 최종 협상을 마무리 짓고,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앞으로 T-50뿐 아니라 TA-50, 기본훈련기인 KT-1 등 다른 기종도 조만간 외국의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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