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의 정세불안으로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정부도 유가 급등 사태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가동하기로 했다.
1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6일(현지 시간) 국제시장에서 두바이유는 배럴당 98.03달러를 기록했다. 전날 99.29달러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소폭 하락했지만 2008년 9월 이후 2년 5개월 만의 최고치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는 가라앉았지만 이란 군함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두고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로 인해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역시 10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두바이유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현재 ‘관심’ 단계인 비상대책을 ‘주의’ 단계로 상향조정할 계획이다. ‘주의’ 단계는 두바이유가 5일 이상 100달러를 넘어서면 발령할 수 있다. 정부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쟁 당시 처음 유가 비상대책을 만든 뒤 2008년 유가폭등으로 한 차례 개편했다가 지난해 하반기 유가 상승 전망에 따라 경보단계와 조치를 강화했다.
‘주의’ 단계에서 정부는 전력 소모량이 큰 유흥업소의 네온사인을 소등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또 아파트 옥탑 조명과 주유소의 전자식 간판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들이 관리하는 다리 조명과 기념탑, 분수대 등의 경관조명도 소등된다.
유가 급등세가 계속돼 5일 이상 130달러를 넘어서면 비상대책은 한 단계 높은 ‘경계’ 발령으로 바뀐다. ‘경계’ 단계에서는 승용차 2부제가 운영되고 대형건물의 실내온도 제한 조치가 더해진다. 또 대중교통 무료 이용 시간을 정해 원유 수요를 줄이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국제유가가 5일 이상 150달러를 돌파하면 최고 단계인 ‘심각’ 발령과 함께 강제적인 소비억제 조치가 내려진다. 공무원들은 자가용 운행이 금지되고 골프장과 대중목욕탕은 영업시간이 단축된다. 또 가로등 역시 절반이 소등된다.
원유 수급에 대한 비상대책은 4단계로 나뉜 유가 비상대책과 달리 2단계로 구성돼 있다. 나이지리아 내전 등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했던 2008년처럼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겨 원유도입량이 평소보다 10% 이상 줄어들면 ‘경계’, 30% 이상 줄어들면 ‘심각’ 발령을 내릴 수 있다. ‘경계’ 단계에서는 정부 비축유를 방출하고 ‘심각’ 단계에서는 발전용 에너지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석유 배급제까지 실시할 수 있다.
석유제품 가격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유류세 인하 역시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유류세 인하는 유가뿐만 아니라 원유 수급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나중에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겨 본격적으로 유가가 폭등할 때 쓸 수 있는 정책카드가 줄어든다는 점도 정부가 유류세 인하에 인색한 이유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 수준(배럴당 147달러)을 기록했던 2008년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러야 본격적으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감안하면 유류세 인하 조치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고 원유도입량이 10% 이상 차질을 빚는 ‘심각’ 단계에 이르러야 취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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