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체 물가 오름세는 완만한데… 식품값만 천정부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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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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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식량자급률-다단계 유통구조 탓

왜 유독 한국에서만 식품물가가 폭등하는 걸까.

올해 들어 장바구니 물가의 폭등이 정치적 불안을 가져올 정도로 신흥국에서 물가 불안이 심각하지만 선진국의 식품물가는 폭등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다.

지난해 4분기 농산물과 가공식품, 음료류를 포함한 한국의 식품물가 상승률은 12.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터키(12.1%)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2위로 나타났다. 한국처럼 식품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1.8%)과 네덜란드의 식품물가 상승률이 1.0%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배 가까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식품물가 상승률이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로 갈수록 떨어지는 식량자급률과 후진적인 식품 수입·유통 구조를 꼽고 있다.

○ 장바구니 물가 상승 두드러지는 한국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4분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7위였다. 특히 계절에 따라 등락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 제품의 물가를 제외한 ‘근원 물가상승률(core inflation)’은 1.8%로 10위를 기록해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인 국가들 중에는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부가 대대적인 물가 단속에 나선 것은 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물가가 다른 선진국보다 유독 폭등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식품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 이후 매월 10%대 상승률을 보이면서 OECD 회원국 가운데 1, 2위를 다투고 있다. 국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한 지난해 9월 이후 OECD 회원국의 평균 식품물가 상승률이 2% 중반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만 식품물가가 빠르게 치솟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국내 식품물가 상승세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으로 물가 비상이 걸렸던 2008년과도 다른 양상이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급등하면서 수입식품 가격을 끌어올렸지만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로 낮아져 수입식품 가격이 낮아졌는데도 식품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 일본 사례 참고해야

한국의 식품물가가 다른 선진국보다 크게 뛰는 배경으로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식량자급률이 꼽힌다. 식량자급률은 한 해 동안 소비되는 곡물과 축산물, 수산식품 가운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양이 차지하는 비율로 1990년 70.5%에 달했던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00년 55.6%로 떨어진 데 이어 2009년에는 51.4%로 매년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하락하면 남아도는 쌀을 제외하고는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이상기후로 농축수산물 생산국들이 잇달아 수출제한 조치를 도입하면서 식품 수입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후진적인 농축수산물 유통구조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농수산물 유통비용은 2000년 최종 소비자가격의 40.6%를 차지했지만 2009년에는 44.1%로 오히려 상승했다. 선진국은 2, 3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는 반면 한국은 농산물을 수입한 뒤 도매상과 중간도매상, 대형유통업체, 소매상 등 여러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소비자가격이 더욱 오르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에 비해 두드러지는 식품물가 상승세를 잡기 위해서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식량자급률이 40%대로 한국보다도 낮은 일본의 지난해 12월 식품물가 상승률은 1.0%로 OECD 회원국 가운데 27번째로 낮았다. 일본이 이처럼 낮은 식품물가 상승률을 유지하는 것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세계적인 곡창지대의 곡물생산 업체들과 제휴하고 안정적인 농산물 수입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1970년대부터 곡물비축시스템을 갖춰 곡물값 폭등에 대비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각 시군에 농산물직거래장터를 설치해 농수축산물의 유통 비용을 줄이고 있다.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이 유별나게 식품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은 취약한 농산물 공급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일본처럼 안정적인 해외 식량 공급처를 확보하는 등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李대통령 “식량확보 범국가기구 만들어야” ▼

이명박 대통령은 7일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범국가적 기구를 만들어 투자유치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가 식량 파동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전세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다가구 매입주택이나 전세 임대주택) 2만6000호에 대한 입주자 선정 등 관련 대책이 차질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면서 “서민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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