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추가협상 타결]김종훈의 협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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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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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싣고 달린 車협상”… 3년반 전 비해 협상력 줄어

‘쇠고기를 싣고 달린 자동차 협상.’

5일 공식 타결이 선언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의 특징에 대해 정부 주변에서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은 미국 측이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한 자동차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쇠고기였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실제로 한국 내 소비량도 계속 늘고 있지만 여전히 쇠고기 문제는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나 막연한 국민정서에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 측이 자동차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쇠고기 카드를 적절히 활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설명이다.

2007년 한미 FTA 최초 타결의 ‘히어로’였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번 추가협상에서는 끊임없이 수세적·방어적 처지에 몰린 것도 쇠고기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한국 측의 구조적 약점 때문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 한국 협상팀의 만성적 약한 고리, 쇠고기

“쇠고기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이달 3일 미국 메릴랜드 주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이번 추가협상에서 김 본부장은 이런 답변을 수없이 되풀이해야 했다. “쇠고기 문제도 논의됐느냐”는 질문은 한국 취재진의 단골메뉴였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5일 추가협상 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또 같은 질문을 받고 A4 용지 두 쪽 분량의 ‘합의 요지문’을 들어 보이면서 “여기 어디에도 쇠고기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미 간 쇠고기 문제는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최초 타결 때부터 이번 협상까지 3년 8개월 동안 항상 ‘민감 사안’이었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절차의 이행에 대한 구두약속을 해준 것에 대해) ‘미국의 압력’이라는 얘기가 난무했고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매국’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18일 한미 양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뼈대로 하는 한미 쇠고기협상을 타결했다. 그러나 같은 달 29일 MBC PD수첩에서 ‘광우병 소’ 관련 내용이 보도된 뒤 이른바 ‘쇠고기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계속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퇴진을 촉구하는 불법 폭력시위로까지 비화했다. 결국 정부는 같은 해 6월 3일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방침’을 발표했고 곧바로 미국과 쇠고기 재협상을 벌여야 했다. 이는 한국이 국내 여론의 압박에 밀려 미국 정부와의 합의를 번복한 선례가 됐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는 결국 이번 추가협상의 빌미가 됐다”고 말했다.

미 측은 지난달 8∼10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통상장관회의에서 자동차에 대한 자신들의 ‘무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쇠고기 문제를 전격적으로 거론하며 한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한국 측도 “쇠고기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 한미 FTA를 안 할 수밖에 없다”며 강경하게 맞서야 했다.

○ 미 측의 무모한 요구를 막아냈지만…

2007년 협상 당시 노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에 자동차와 섬유 분야에서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하며 ‘쇠고기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구두로 약속했다. 김 본부장은 “이 통화가 한미 FTA 타결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힌 바 있다. 자동차 섬유가 한미 FTA의 최대 수혜자가 된 배경에는 쇠고기의 이런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김 본부장은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너무 많이 얻었다. 웬디(웬디 커틀러 당시 미 측 수석대표)가 서울을 떠나기 전 ‘나는 비행기 타고 돌아갈 때 뭐 가져가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미 FTA는 난기류에 휩싸였다. 자동차노조 등의 지지를 받고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 FTA 자동차 조항의 불공정성을 거론하며 재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통상교섭본부 당국자는 “미 측은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 철폐 시기를 8∼10년 뒤로 대폭 늦추고, 이미 합의됐던 관세환급제도 폐지하고, 미국산 자동차의 대형차 소형차 간 세율 확대도 금지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쏟아냈다”고 소개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김 본부장이 기자들에게 “미국의 처음 요구를 알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 조세 체계의 예외까지 만들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이 자동차와 관련해서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배경에도 쇠고기가 작용했다”고 전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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