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에 더 유리하게?… 거꾸로 갈 뻔한 법개정 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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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환기간 5년서 3년으로
개정안 금융계 반발로 철회
악성 채무자 재산 조회 등
사후관리 강화 여론 높아

정부도 현행 통합도산법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개정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법무부는 “통합도산법과 관련한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해 10차례 넘게 실무 논의를 했다”며 연내 개정이 목표라고 16일 밝혔다. 법무부는 다음 달 10일 도산법이 발달한 미국과 싱가포르의 전문가를 초청해 국제세미나를 여는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례도 반영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의 통합도산법 개정 방향을 지켜보는 금융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해 7월 공개했던 개정안 초안에서 가뜩이나 채무자에게 유리한 조항을 더 유리하게 바꿔 금융권의 거센 반발을 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회생자의 빚 상환기간을 단축한 게 문제가 됐다. 현행 통합도산법은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의 경우 최장 5년간 일정액을 갚으면 상환 의무를 면제해주고 있다. 법무부는 상환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5년으로 유지하는 등 사실상 완화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려고 했다. 개인회생은 빚의 규모와 관계없이 매달 갚을 돈이 미리 정해지는 탓에 상환기간이 단축될수록 갚을 돈도 적어진다.

법무부는 매년 10만 명 넘게 양산되는 개인파산자를 줄이기 위해 파산 전 단계인 개인회생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이 즉각 “고의로 빚을 갚지 않으려는 악덕 채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성실히 갚을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발하자 법무부는 개정안 초안을 철회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안대로 되면 채무자들이 사적 채무자 구제제도인 개인워크아웃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권에서는 미국처럼 개인파산을 신청하기에 앞서 상담 및 교육을 의무화하고, 파산 선고 이후에도 신용을 회복해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조항을 통합도산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함께 악의적 채무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직권 재산조회와 구두심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통합도산법 개정 논의가 1년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을 정부의 ‘친(親)서민정책’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전문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약자로 인식되는 채무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면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면서도 “개인파산자, 개인회생자로 쉽게 전락하도록 하는 게 친서민인지도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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