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경쟁 유도 겨냥한 ‘오픈프라이스’ 확대 1주일… 현장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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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8일 03시 00분


“얼마더라?” 슈퍼주인은 어리둥절
“올랐어요?” 소비자들은 부글부글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작은 슈퍼마켓.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매장으로 들어갔다. 13.2m²(4평) 남짓한 가게를 혼자 지키고 있던 70대 할머니는 기자가 낸 1000원을 받고 200원을 거슬러 줬다. 잠시 후 할머니는 “아, 이거 누가바네. 누가바는 1000원이야. 쮸쮸바가 800원이고”라며 200원을 다시 달라고 했다.

포장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다. 기자가 “누가바가 1000원이나 해요? 언제부터 1000원이에요?”라고 묻자 “이번에 가격표시를 없애면서 가격이 올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달부터 권장소비자가격 표시 안 하는 거죠?”

“권장소비자가를 없애면서 아이스크림 가격이 엄청 올랐는데 영업사원에게 ‘왜 올리냐’고 물었는데도 모르더라고. 우리 같은 영세상인들은 제조업체에서 팔라는 가격대로 팔지 우리 마음대로 가격을 조정 못하잖아. 그런데 가격표시를 없애서 왜 이리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어.”

제조업체가 정하는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를 금지하고 판매자가 가격을 정하는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확대 시행된 지 1주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대 슈퍼마켓 6곳과 대형할인점 4곳 등 10곳을 돌아본 결과 대부분의 소규모 상인은 “상당히 혼란스럽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 구멍가게 주인의 불만

“권장판매가격 없애면서
과자-빙과류값 엄청 올라
영업사원에게 이유 물으니
그 사람도 잘 모르더라고”


1999년 신사정장 숙녀정장 아동복 등에 처음 적용된 오픈프라이스 제도는 이번에 의류 전 품목(247종)과 가공식품(아이스크림, 빙과류, 라면, 과자 등 4종)에 확대 적용됐다. 제조업체가 가격을 정하지 않고 판매자들의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슈퍼는 제조업체 영업사원이 말해 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판매하고 있어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 효과를 찾기는 어려웠다. 일부 아이스크림과 과자류는 오히려 권장소비자가가 없어지면서 값이 올라 소비자들도 불만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역 인근의 한 소형 슈퍼 점주는 “대부분의 상품은 예전 권장가대로 받고 새로 들어온 물건은 영업사원에게 가격을 물어본다”고 말했다. 제조업체가 성분표시란에 ‘L-20(2000원)’ 식으로 ‘암호화’해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 제과업체는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 주인들은 고령자가 많고 특히 도심 외곽 및 농어촌 점주는 노인층이 대부분이라 과도기적으로 일부 제품에 넣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는 가격경쟁력이 약한 소규모 점포에 상당히 불리한 제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연구원은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동네슈퍼들은 공동구매, 공동마케팅 식으로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들은 이미 가격 결정을 대부분 스스로 해왔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오픈프라이스가 소비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정도로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의류 품목은 1999년부터 이 제도가 시행돼 왔지만 기자가 6일 시내 대형 백화점 본점에서 만난 의류 판매사원은 대부분 오픈프라이스가 적용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또 상당수 의류는 제조업체의 가격태그가 판매업자 가격태그와 함께 붙어 있었고 일부는 바코드 밑에 ‘69’(6만9000원이란 뜻) 또는 ‘ITEM CODE:0000159000’(15만9000원) 식으로 가격을 편법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매장 직원들은 “제조사 가격태그가 있어야 재고관리나 환불할 때 편리하다”며 “왜 가격표시를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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