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개 공공기관 경영평가 오늘 발표… ‘부작용’ 사례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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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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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서 고득점 전략 논의하기도
효율성 높이기는 뒤로 밀려… “점수 깎일라” 노조에 끌려다녀

지난해 9월 24일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식당. 한국청소년수련원 이사 8명이 모여 이사회를 열었다. 이날 안건은 기관장 경영계약서, 중기경영목표, 선임비상임이사 선출 등이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주된 화제는 6월에 발표된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였다. 청소년수련원은 지난해 기관장 평가에서 최하 등급인 ‘미흡’을 받아 기관장이 물러났다.

한 이사는 “300여 개 공공기관이 있는데 그중 최하위 4개 기관에 청소년수련원이 들어갔다”며 “뭐가 부족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수련원의 기획혁신팀장은 대졸 초임 인하와 관련한 연봉테이블이 수정되지 않았고 단체협상에서 사측에 불리한 조항이 남아 있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후속대책 논의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공공기관 이사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기관은 장기 비전을 토대로 경영효율성을 높이기보다는 매년 실시되는 경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데 주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평가에 포함되는 노사관계 점수를 의식해 노조에 끌려 다니는 사례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14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96개 공공기관의 2009년 경영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관장 평가에서 경고를 받았던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이사들은 지난해 9월 이사회에서 경영평가 고득점 획득을 위한 ‘훈수’를 뒀다. 참석자들은 △노사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므로 노사관계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리더십 부문의 가중치가 높은 점을 감안해 노사공동위원회 같은 기구를 설치해 운영하라고 조언했다.

대한석탄공사도 지난해 11월 이사회를 열어 경영평가 고득점 전략을 논의했다. 한 참석자는 “인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노사관계 선진화 부문의 지표를 관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열린 이사회에서는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지난해 경고를 받은 기관장이 올해 또 경고를 받으면 해임건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경고를 받은 기관장은 올해 평가에 ‘올인’해야 하는 처지다. 자연히 노조에 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공공기관장은 “기관장이 ‘경고’를 받으면 노조 문제에서 을(乙)이 된다”며 “노조를 자극할 수 있는 정책은 ‘쉬쉬’하고 노조의 요구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공공기관의 한 이사도 “임금체계를 개선하고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이사장 혼자 할 수 없고 노사합의를 해야 한다”며 “노사합의가 안 되면 관련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관장 평가에서 기획재정부는 청소년수련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산재의료원 한국소비자원 등의 기관장 4명에 대해 해임 건의를 했고 한국방송광고공사, 대한석탄공사 등의 기관장 17명에 대해선 경고 조치를 취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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