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왕회장’ 그늘 벗어나 독자경영 10년… 정몽구 회장 리더십 연구

  • 동아일보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과감하게
오로지 일만 생각하는 ‘뚝심 승부사’

《2000년 5월 31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유동성 위기로 현대그룹 전체가 흔들리자 자신을 포함해 두 아들인 몽구(당시 현대자동차 회장), 몽헌(당시 현대 회장)이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3부자 동시 퇴진’을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MK)은 이날 저녁 보도자료를 통해 “자동차 사업에 전념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퇴진을 거부했다. ‘왕회장’의 뜻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던 MK가 처음으로 영(令)을 거역한 것. 이날의 ‘항명’이 MK가 ‘왕회장’의 그늘을 벗어나 현대차를 사실상 독자경영하게 된 계기라고 현대차에서는 의미를 부여한다. 현대차는 그해 9월 그룹에서 분리됐다. 당시 선진국 시장에서 값싼 차로만 인식되던 현대·기아자동차를 세계 6위의 자동차회사로 성장시킨 데는 최고경영자(CEO)인 MK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어눌한 말투와 종잡을 수 없는 ‘럭비공 인사’, 비자금 조성 사건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부각된 탓에 MK의 리더십은 과소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홀로서기’ 10년을 맞아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을 조명해 본다.》

○ 일이 취미인 재벌 오너

MK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 자동차 마니아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계열사 사장들과 골프를 즐기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다른 대기업 오너는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취미가 있지만 정 회장은 그렇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서울 근교 산을 오르기도 했지만 현대·기아차 경영을 맡은 이후에는 오로지 일밖에 모른다는 게 현대·기아차 임원들의 전언이다.

■ 취미가 따로 없다
주말과 휴일에도 신문-방송 뉴스 섭렵

주말과 휴일에도 자택에서 신문과 방송 뉴스를 보며 국내외 정세 변화가 자동차산업과 회사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주말 동안 국내외에서 일어난 뉴스를 ‘섭렵’한 정 회장은 월요일에 출근해 계열사 사장이나 그룹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데 ‘무방비 상태’로 질문을 받았다가 정 회장한테 무안을 당하는 적도 많다. 김동진 전 부회장은 “계열사 사장이나 부회장이라고 해도 주말에는 운동도 하고 개인적인 여가를 갖지만 회장은 오로지 일 생각밖에 없다”며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중요한 투자 결정을 할 때는 며칠 동안 밤잠을 자지 않고 심사숙고한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 현대차가 질주한 데는 정 회장의 결정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정 회장의 유일한 즐거움은 그룹 부회장이나 계열사 사장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업무와 관련한 이야기만 오간다고 한다. 한 퇴임 임원은 “저녁 자리가 4∼5시간 이어질 때도 있는데 화제가 업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회장님 앞이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술이 들어가다 보니 평소에 하기 힘든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술자리를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수시 인사와 패자부활

정 회장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때를 가리지 않고 하는 ‘수시 인사’와 한번 퇴임시킨 인사를 다시 요직에 중용하는 ‘패자부활’이다. 이를 두고 긴장감을 불어넣어 조직을 유지하는 정 회장 특유의 용병술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공포정치’ ‘인사전횡’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많은 게 사실이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승승장구하던 최고경영자급 임원이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싸는 일이 있는데 대부분 허위 보고를 하다가 적발됐거나 노조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라고 한다. 2008년 말 주력 계열사의 최고위 임원 2명이 동시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일이 있었다. 그 회사는 실적도 좋았기 때문에 의외의 인사였다. 노조와 이면 계약을 한 사실을 MK가 뒤늦게 알고 경질 인사를 한 것이었다.

‘장수 2인자’ 안둬
수시로 CEO 교체 ‘럭비공 인사’ 비판도

정 회장은 ‘2인자’를 곁에 오래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는 이학수 삼성 고문, LG그룹의 강유식 부회장 등은 ‘2인자’로서 장수하고 있지만 현대·기아차그룹에는 장수하는 2인자가 없다. 박정인 김동진 부회장 등 한때 현대·기아차그룹의 2인자로 평가받던 CEO들은 예상보다 일찍 회사를 떠났다. 오랜 기간 자신을 보좌한 임원을 퇴임시키는 게 인간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 회장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앞뒤 안 보고 인사권을 행사한다. 현대차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은 “2000년 ‘왕자의 난’ 당시 ‘가신’으로 불리던 측근 그룹의 폐해를 몸소 겪었기 때문에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며 “측근으로 분류되던 임원이 갑자기 인사가 나면 ‘저런 사람도 집에 가는데’ 하는 생각에 더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에는 장수하는 2인자가 없는 대신 부회장을 10명 이상 두는 ‘집단 부회장’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4대 그룹 부회장 수는 삼성 4명, LG 5명, SK 6명이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은 부회장이 14명이나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성과가 있을 경우 정몽구 회장이 바로바로 승진 인사로 보답하다 보니 부회장 수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재무, 인사 등 경영지원 부문은 로열티를 중시하고, 연구개발은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정 회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측근 그룹 중에서는 학력이나 경력이 화려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연구개발 분야의 임원 중에는 해외 유학파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중용되고 있다.

○ “자동차 품질만 생각한다”

MK는 자동차 품질 향상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밀어붙이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업은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MK는 2004년 한보철강 인수에 나섰는데 이는 2000년 계열 분리를 하면서 자동차 전문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한 본인의 말과는 배치되는 일이었다.

선친 유지라도…
車 무관한 대북사업 분명하게 선 그어

MK는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면서도 한보철강 인수를 진두지휘해 포스코와 동국제강 컨소시엄을 제치고 인수자로 선정됐다. 당시 인수 주체로 나섰던 INI스틸(현 현대제철)에서 인수가로 8500억 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고하자 MK는 100억 원을 더 올리라고 지시했다. MK는 입찰 마감 당일 500억 원을 더 쓸 것을 지시했다. 뚜껑을 연 결과 포스코도 9100억 원대였다. 현대차는 근로자 고용 등 비가격 요소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한보철강의 새 주인이 됐다. 올 1월에는 왕회장 때부터 소원이었던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루었다.

반면 자동차 품질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당시 현대차 임원이 정 회장에게 타이어 회사를 설립하자는 의견을 냈다. 현대·기아차 자체 수요만으로도 사업성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MK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북사업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임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현대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 앞에서는 대북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라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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