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가파른 상승… ‘철강發 인플레’ 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9일 03시 00분


고철 탄소강 등 18~20%↑
단가인상 요구 납품 중단도… 완제품 가격 들썩일 듯

고철과 탄소강 등 원자재 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주물업계와 단조업계, 제관업계가 수요처인 자동차와 조선, 기계 분야 대기업 및 이들의 1차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인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18일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일부 주물업체는 이날부터 생산을 중단하고, GM대우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 5곳과 일부 조선업체 1차 협력업체 등에 납품을 하지 않았다. 산업계에선 ‘철강발(發)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주물·단조업계 “납품 거부도 불사”

철강발 가격 인상 압력은 일단 수요업체인 대기업, 중견기업들과 납품업체인 중소기업 간의 납품단가 조정 갈등으로 표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고철을 주된 원자재로 사용하는 주물업계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자동차, 조선, 중장비, 공작기계, 산업기계, 금형 등 6개 분과에서 수요업체 측과 납품단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고철 가격의 경우 올해 1월 kg당 474원에서 지난달 kg당 562원으로 석 달 새 18.6% 올랐으나 납품 가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물업계 비상대책위원회는 당초 “17일까지 협의가 안 되면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아직까지 집단적인 생산 중단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일부 주물업체는 “공장을 더 운영해봤자 적자 폭만 커질 뿐”이라며 18일부터 생산 중단에 들어갔다. 주물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업체 등에 대해서는 일단 20일까지 두고 보기로 했다”며 “요구 인상 폭의 절반만 들어주겠다는 회사도 있고 아예 버티는 곳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앞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도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조합 회의실에서 13개 업체 대표들이 모여 수익구조 개선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앞으로 상생협력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나오는 등 격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조공업협동조합 측은 “원자재인 탄소강이 최근 1년간 20%가량 값이 올랐는데 납품가격은 8% 정도밖에 오르지 않았다”며 “최후 수단으로 납품 거부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캔이나 통조림 등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제관업계도 주재료인 주석도금강판 가격이 두께 0.3mm기준으로 올해 초 121만9000원에서 최근 141만9000원으로 t당 20만 원이 올랐으나 납품 단가는 거의 오르지 않아 울상이다. 문광미 한국제관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수요 대기업들과 납품 단가 협의를 하고 있으나 ‘검토해 보자’는 말만 듣는 정도”라며 “지금 같은 상태가 이달 말까지 이어진다면 공급을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제품 가격 상승 어느 정도 불가피”

주물과 단조품 등을 대기업이나 1차 협력업체에 공급하는 납품업체들은 “치솟는 원자재 가격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하소연한다. 직원 30여 명 규모의 주물업체 A사의 B 사장은 “주물업체들이 다들 대출한도가 목까지 차서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며 “2월까지는 한 달 적자폭이 2000만 원 정도였으나 3월부터는 5000만 원에 이르러 설 상여금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고 했다. C단조업체의 D 사장은 “단조업체는 원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도 대기업, 수요 회사도 대기업이라 어느 쪽으로도 가격 협상을 할 여지가 없다”며 “업체들끼리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회사 문 닫더라도 납품하지 말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납품 중소기업의 숨통은 트이지만 최종 완제품에 인상 요인이 반영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승우 지식경제부 철강화학과장은 “철강 원자재 값 상승에 따른 최종 제품의 가격 상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수출 경쟁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경부 측은 “지난주부터 대기업을 통해 1차 협력업체에 어느 정도 가격 인상 요인을 반영해주도록 행정 지도를 하고 있다”며 “다만 원가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데 시차가 있고 대기업이 한꺼번에 올려주기는 어렵다고 버티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GM대우자동차 측은 “우리가 주물업체를 개별적으로 만날 이유는 없으며, 원만히 잘 해결하라고 1차 협력업체를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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