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새 45조4000억원 증가… 부채축소 나선 선진국과 대비
李대통령, 한은 보고에 공감… 여신관련 규제 강화 가능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가계부채가 줄었지만 한국만 계속 늘고 있다고 한국은행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한국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에 대해 면밀히 점검할 것을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달 말 퇴임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로부터 가계부채 현황을 보고받고 “현재 가계부채 수준이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에 대해서는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가계와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가계부채에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높은 만큼 주택 가격과 건설경기 등 관련 부문의 동향을 주의 깊게 보고 가계부채로 인한 불안심리가 나타나지 않도록 정부가 국민에게 자세히 설명하며 관리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에 어느 정도 동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지난달 국회에서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가계 부채”라며 “금융안정에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2009년 말 현재 733조7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5조4000억 원(6.6%) 증가했다. 반면에 지난해 전국 가구의 평균소득은 4131만 원으로 전년의 4071만 원보다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은은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대부분의 가계가 부채축소(디레버리징)에 나섰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지난해 6.6% 늘어난 반면에 미국의 개인부채는 13조7600억 달러로 1.5% 감소했다. 일본과 영국의 가계부채도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0.6%, ―1.6%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86.5%로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 중 스페인(89.8%)과 비슷하고 그리스(62%), 이탈리아(49.1%)보다 높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나서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함에 따라 앞으로 여신 관련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장민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를 단기간에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당국이 은행 예대율 규제 등을 강화해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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