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놀아” 명령하는 순간 놀이도 노동이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노동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고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DBR 사진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노동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고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DBR 사진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는 노동과 놀이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노동’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돼 있지만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결합돼 있다.

건물 공사장에서 모래를 나르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이 모래를 나르는 목적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다. 따라서 모래 나르기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이들에게 모래 나르기가 즐거울 리 없다. 그렇다면 즐거움은 언제 찾아올까? 모래를 모두 옮기고 난 후 임금을 받는 순간이다. 고단한 모래 나르기는 이처럼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희생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이다. 이런 노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놀이’는 어떤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모래를 갖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뙤약볕 아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래로 이것저것 만들고 부수면서 경쾌한 웃음을 짓고 있다. 모래로 성곽을 만들었다고 해서 누가 돈이나 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모래 만지기는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이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위징아는 놀이가 노동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인간의 자유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놀이가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순간 결코 놀이일 수 없다. 어느 회사 사장이 최근에 등산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얻었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人之常情). 그는 등산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부하 직원들과 나누고 싶어서 한 달에 한 번 산행을 가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과연 부하 직원들도 등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까?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직원들에게 정상을 향한 발걸음은 ‘억지로 흉내를 내는’ 놀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장은 명령이 개입되는 순간 놀이가 노동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놀이는 인간이 가진 창조성의 비밀을 푸는 열쇠다. 인간은 노동보다 놀이를 통해 놀라운 집중력과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즐겁게 하는 일에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 붓는 게 인간이다. 위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했던 일이 즐거웠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결코 겸손이 아니다. 정말로 그들은 자신의 일을 놀이로 영위했다.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일에서 놀이가 가진 즐거움과 창조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강신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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