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는 여유자금을 저축하고 기업은 이 돈을 대출받아 투자하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부채에 발목이 잡힌 가계는 저축을 줄이는 반면 기업들은 돈을 은행에 쌓아두고 있다. ‘가계는 저축, 기업은 투자’라는 경제주체의 전통적인 역할이 뒤바뀌고 있는 것이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들의 예금은행 총저축은 215조797억 원으로 2008년 말(177조3364억 원)보다 37조7433억 원(21.3%) 늘어 사상 최대의 증가폭을 보였다. 특히 기업 저축 가운데 1년 이상의 장기예금 비중은 85%에 달해 ‘카드사태’를 맞았던 2003년(86%) 이후 가장 높았다. 투자를 포기하고 오랫동안 은행에 돈을 묻어두려는 기업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반면 투자의 원천인 가계저축은 지난해 말 현재 360조5338억 원으로 2008년(326조 6151억 원)보다 1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8년 증가율(10.5%)에 비해 소폭 감소한 수치로 기업저축 증가율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가계저축 가운데 상당 부분은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했던 돈을 은행예금으로 그냥 옮긴 것이어서 지난해 가계저축률(세금과 이자를 제외한 가처분소득 중 소비하고 남은 돈의 비율)은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2008년(2.5%)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가 저축을 늘리지 못하는 것은 지난해 경기침체로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한 데 비해 부채는 큰 폭으로 늘어난 탓이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 소득은 4131만 원으로 1년 전보다 60만 원(1.5%) 늘었지만 가구당 부채는 4337만 원으로 209만 원(5.1%)이나 증가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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