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르고 경기는 내리막” 두바이 드림 꿈꾸던 이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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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2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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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축제로 4일 만에 문 연 거래소엔
주식 사려는 사람은 없고 기자들만 북적
새 기회 찾아 다른 도시로
흔들리는 ‘두바이 신화’ 현장 2신

30일 오전 10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중심가에 있는 월드트레이드센터 1층의 주식전광판은 온통 붉은 빛 일색이었다. 단 한 종목의 예외 없이 하락세로 출발한 것이다. 낮은 탄식도 간간이 나왔지만 객장을 채운 투자자들은 대부분 예상한 일이라는 듯 말이 없었다.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다"
이날 거래소 객장은 개장 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로 북적였다. 두바이 재무부는 지난달 25일 저녁 최대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를 신청했고 이 파장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증시를 강타했다. 하지만 정작 두바이 증시는 이슬람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로 인해 4일 동안 문을 닫아 폭풍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날 투자자들의 관심은 하락 여부보다는 '얼마나 떨어지느냐'에 집중됐다. 개장 전 현지뉴스를 통해 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이 시중은행들에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 가닥 희망을 갖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두바이 종합주가지수(DFM)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전날보다 120.96포인트(5.87%) 급락한 1970.20으로 시작해 낮 12시 반(현지시간) 7.19%까지 하락 폭이 늘어난 상태다. 특히 두바이월드의 주가는 장 초반 15%까지 떨어졌다.
개인투자자 무함마드 맘수르 씨(36)는 "건설사 주식을 팔려고 나왔는데 벌써 10%나 떨어졌다. 그래도 살 사람이 없다"며 "최소한 다음 주말까지는 증시가 안정세를 보이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다른 투자자는 "곧 아부다비에서 지원을 결정하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부다비 증시도 이날 개장 후 7.4%의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의 긴급 유동성 지원 방침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은 "중앙은행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결국 아부다비의 지원 결정만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무너지는 '두바이 드림'
두바이는 그 동안 기업과 근로자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세계 전역에서 두바이 드림을 꿈꾸는 찾아온 사람들 덕분에 8년 만에 인구(164만6000명)는 91% 급증했다. 하지만 이제는 두바이 드림이 끝나가고 있음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다.
30일 만난 파라드 무함마드 후세인 씨(22)는 "물가는 비싸고 경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두바이에서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두바이에서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두바이는 사업을 위한 곳"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후세인 씨는 이란 남동부 자헤단 출신으로 3년 전 두바이로 건너와 삼촌과 인력파견업체를 차렸다. 하지만 인력 수요가 줄어든 데다 사기까지 당해 문을 닫고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연방국인 샤자로 건너가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택시에서 만난 파키스탄인 알리 굴름 씨(28)는 "일하며 버는 돈으로 파키스탄에 있는 다섯 식구가 생활하는데 최근에는 버는 돈도 점점 줄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한국 건설사들도 신규 발주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두바이를 떠나 새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부자 이웃' 아부다비가 주 무대다. 두바이 시내에서 차를 타면 아부다비 국경까지는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아부다비에서 총 20억 달러에 이르는 공사를 수주하고 두바이에 있던 기능인력 500여 명과 엔지니어 200여 명을 아부다비로 옮겼다. 삼성물산 현지 관계자는 "사우디 현지법인을 올해 초에 만들었고 카타르, 알제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아랍에미리트 지사는 10월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사무실을 옮겼다.
두바이=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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