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법 국회표류에 지주회사 겉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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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7개월째 낮잠
SK 지주회사 전환 유예
두산-한화 금융자회사 골치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간부는 지난달 중순 전국경제인연합회 임원을 만나 “국회에 넘어가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게 도와달라”며 재계의 ‘측면 지원’을 요청했다. 이 간부는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얼마나 답답하면 전경련에까지 도와달라고 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공정위가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 차원에서 비금융 지주회사 밑에 금융 자회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상임위원회 내 법안심사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하는 대기업들도 내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 1년 동안 법안 처리 지지부진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 방침을 확정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였다. 금융위원회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증권, 보험 중심의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게 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했다.

공정위는 이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비금융 지주회사에 은행을 제외한 증권, 보험 등 금융 자회사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제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의원입법에 부담을 느낀 한나라당이 거절하는 바람에 입법예고, 규제개혁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야 했고 결국 올해 4월에야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금융지주회사법은 7월 미디어관계법 개정안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가결선포가 유효하다는 판단을 받은 뒤 이달 초 시행령 개정안까지 입법예고했다. 반면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에 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법안인데 하나는 통과되고 다른 하나는 지지부진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곤혹스러워하는 재계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대기업들은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사업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K는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SK증권을 매각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6월 지주회사 전환 유예를 신청했다. 두산 한화 등도 금융 자회사가 지주회사 전환의 걸림돌이 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지주회사를 준비 중인 대기업의 증권, 보험 자회사 직원들의 동요가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200% 제한 및 비계열사 주식 5% 이상 보유 금지 조항을 없애고 손자(孫子)회사의 자회사인 증손회사를 허용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다 규제에 막힌 중소 규모의 지주회사들은 국회만 바라보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 79개 지주회사 중 53개는 자산총액이 5000억 원 미만인 중소 규모 지주회사들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면서 일반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사라졌지만 부채비율 등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이 더 많은 규제에 시달리고 있어 역차별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개정안에는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모펀드(PEF)의 의결권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에 따라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 경제위기 이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구조조정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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