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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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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전 회장이 우리은행의 파생금융상품 투자 손실 책임으로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에서 중징계를 받고 사임한 뒤 4대 은행 지주회사의 인사 및 경영전략에 변화의 바람이 연쇄적으로 불고 있다. 인사 후폭풍, 라이벌 은행의 변화에 따른 새 전략 짜기, 금융기관 인수합병(M&A)에 대한 대비, 금융 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정부의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4대 은행의 커튼 뒤에서는 치열한 두뇌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 내년 3월 KB금융 새 회장 선임 가능성
KB금융지주는 5일 인사에서 최인규 국민은행 최고전략책임자(CSO)가 KB금융지주 CSO를 겸임토록 하고 신현갑 KB금융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국민은행 CFO까지 맡도록 했다. 또 KB지주의 부서장 6명을 보직 없는 조사역으로 발령을 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회장 대행을 맡은 강정원 행장이 황 전 회장 편에 섰던 사람들을 자른 것 아니냐고 분석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패장(敗將)과 뜻을 같이한 조직원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큰 변화를 염두에 둔 장기 포석이라는 것이다.
지주사와 은행의 CSO와 CFO를 한 사람이 겸임토록 한 건 법적으로 분리된 두 회사의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조치다. 강 행장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새 회장이 선임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번 인사를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직의 핵심인 CSO와 CFO가 지주에 남아 있다면 강 행장 대행체제가 끝나고 새 회장이 선임돼도 강 행장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은행장이 회장까지 하면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라며 “내년 초 주총 이후까지 겸직 체제가 유지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인사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금융당국과 민간 금융회사가 긴밀히 연결돼 있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하면 흘려보내기 힘든 발언이다.
무보직 조사역으로 발령 난 6명의 전직 부서장은 이달 중순 국민은행 지점장 등으로 선임된다. 지주사와 은행이 독립된 회사여서 일단 퇴직한 뒤 재입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일 뿐 보복성 인사는 아닌 셈이다. 김중회 KB금융 사장은 “조직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의 개편이 있었을 뿐 ‘숙청’ 논란은 실제 상황과 결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 우리은행 임원에도 후폭풍
우리금융지주는 지난달 예금보험공사의 지시에 따라 과거 우리은행의 파생금융상품 투자 손실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황 전 회장뿐 아니라 전현직 우리은행 임원 가운데 일부가 소송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 현직 임원이 소송에 휘말리면 우리은행은 연말 인사 때 조직쇄신 차원의 대규모 인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측이 현실화하면 10명에 이르는 우리은행 부행장들은 연말 이후 거취를 장담할 수 없다.
작년 12월 이종휘 행장 취임 후 처음 실시한 임원 인사에서 부행장으로 발탁된 7명의 파격인사 수혜자들은 황 전 회장에 대한 징계 후폭풍의 강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작년 말 인사에서 유임된 부행장들도 유동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박해춘 전 행장 재임 당시 영업본부장을 거치지 않고 이례적으로 중용된 일부 부행장이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속으로 웃는 신한·하나금융
신한금융지주는 황 전 회장 징계를 계기로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을 중심으로 한 ‘투 톱 체제’가 더 강화되는 분위기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KB지주나 우리금융은 회장 중심 체제여서 사장 이하 임원의 의견이 잘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금융그룹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어서 은행장의 영향력도 막강한 구조”라며 “반면 신한금융은 신상훈 사장의 발언권이 점차 강화되고 있고 은행이 그룹의 이익에 기여하는 비중도 50% 정도밖에 되지 않아 조직 내 마찰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내년 3월 라 회장 임기 만료 후를 뜻하는 ‘포스트 라응찬’ 체제는 신 사장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KB와 우리금융 등이 내홍을 겪는 동안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무보증 소액신용대출 기관인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대외 행보를 활발히 하고 있다. 재단 이사장 취임은 금융당국의 김 회장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어서 나중에 은행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하나지주는 1조2000억 원 안팎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등 외형 확장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은행 중심 지주회사의 경영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외이사 제도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새 제도를 마련해 적용하는 과정에서 전체 은행 지주회사 경영진의 면면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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