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희귀금속 확보 전쟁 중… 한국은 ‘통계’도 없다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58분


리튬 인듐 희토류 몰리브덴 등
경제 회복세 타며 수요 급증
中, 일부 희귀금속 수출 아예 차단
자급률 9% 한국, 재활용도 걸음마

7월 24일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역 단둥에서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빼내려던 바나듐 70kg(3600만 원 상당)이 적발됐다. 바나듐은 미사일 제조에 쓰이는 희귀금속의 일종으로 중국이 엄격하게 수출 관리를 하고 있는 전략물자다. 국내 자원 전문가는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당시 적발은 이례적이었다”며 “중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따르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전략물자 방어 차원이었다는 해석이 많다”고 전했다.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자원 확보를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특히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2차 전지, 휴대전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과 같은 전자제품 등을 만드는 데 소량이지만 꼭 필요한 희귀금속 확보전이 치열하다. 리튬이나 인듐, 바나듐 등의 금속은 땅속에 존재는 하지만 매우 적거나 지리적으로 한곳에 집중돼 있어 추출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요즘처럼 첨단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때에는 없어서는 안 될 자원들이다. 우리는 희귀금속을 써야 하는 제조업은 많은데 매장량이 적을뿐더러 재활용도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자원 확보와 재활용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희토류 매장량 98%는 중국에

6월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이 실리콘, 텅스텐, 몰리브덴 등의 수출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중국은 일부 금속에 한해 수출 관세율을 낮추는 등 유화 제스처를 쓰기도 했지만 일부 금속의 수출은 아예 차단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대표적인 금속이 희토류.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희귀금속 희토류 세계 매장량의 98%를 보유하고 있다. 희토류는 휴대전화,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제조와 석유화학 촉매제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금속물질이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면 국내 제조업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는 셈이다.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생전에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한 말이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은 또 인듐과 몰리브덴, 텅스텐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 인듐 매장량 35% 분량이 일본 전자제품에

반면 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재활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폐기된 전자제품 등에서 희귀금속을 추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엄청난 양의 희귀금속이 일본산 전자제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물질재료연구소가 2007년 추정한 바에 따르면 액정이나 태양전지에 쓰이는 희귀금속인 인듐은 세계 매장량의 35%가 일본의 전자제품 속에 들어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일본은 ‘도시 광산’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광산이 아니라 폐기물을 순환자원으로 보고 폐기물 속에 들어 있는 금속을 산업 원료로 다시 공급하는 산업이라는 뜻이다. 도시광산은 금속 채취의 효율성이 매우 높다. 금은 원석 1t에서 4g이 나오는 반면 휴대전화 1t에는 280g의 금이 포함돼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은 도와홀딩스 등 폐전자제품으로부터 희귀금속을 추출하는 앞선 기술을 가진 기업이 많은 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했다.

일본만 희귀금속 재활용에 앞서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따르면 미국과 독일도 전체 사용되는 희귀금속 중 약 40%는 폐기된 전자제품으로부터 얻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한국은 재활용 기술-정책 시작 단계

한국의 희귀금속 자급률은 9%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재활용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지만 재활용 기술도 부족하고 이에 대한 정책도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7월 지식경제부가 ‘도시 광산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이후 지경부와 환경부의 주도권 다툼으로 정책 이행이 늦어지고 있다. 도시광산 프로젝트는 ‘폐기물관리법’과 연관이 많은데 이 법이 환경부 소관법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재활용과 관련된 명칭도 합의가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도시 광산’이라고 부르자고 하는 반면 환경부는 ‘폐금속 자원 활용’을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과 같이 2차 자원에 대한 통계가 없어 1단계로 우선 구리 등의 정확한 통계 파악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정부 산하 연구소 관계자는 “런던 금속거래소에서는 내년부터 코발트와 몰리브덴의 선물 거래를 시작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희귀금속은 국제 자금의 투기에도 휘말릴 수 있게 됐다”며 “그렇게 되면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희귀금속(rare metal):

철, 구리 등과 같은 일반 금속에 비해 매장량이 적고 한곳에 집중돼 있으며 추출이 어려운 금속을 일컫는다. 총사용량 자체는 얼마 안 되지만 첨단 전자제품 등의 소재를 만드는 데 쓰여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국내에서는 리튬 니켈 인듐 몰리브덴 등 35종을 희귀금속으로 분류하고 있다. 희유금속으로도 부른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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