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금융위기와중에…한은-금감원 한심한 ‘밥그릇 싸움’

  • 입력 2009년 4월 29일 03시 02분


○ 한은이 폭로한 금감원의 ‘딴죽’

BIS 자료 요청에 “그런 것 없다”

외환시장 공동조사뒤 “동의 못해”

○ 금감원이 폭로한 한은의 ‘딴죽’

파생상품 정보 요청에 “法 위반”

투기적발 자료이용 제의도 거절

한국은행법 개정을 둘러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간 싸움이 서로에 대한 비방전으로 확산되고 있다. 두 기관은 국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기본적인 업무협조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협조 먹통=한은과 금감원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한은법 개정과 관련한 의견서를 냈다. 그런데 이 의견서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양측의 갈등 사례가 들어 있다.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12월, 한은은 금감원에 시중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관련한 기초 자료를 요청했다. 은행들의 재무건전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한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부인했다. 이에 앞서 한은은 2007년 11월 외환시장 불안 징후를 감지하고 금감원에 공동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실태조사 직전에 금감원 직원이 해당 은행에 “한은에 자료를 제공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사를 마치긴 했지만 금감원이 조사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통보함에 따라 은행을 제재할 수 없었다고 한은은 밝혔다.

한은은 2006년 11월에도 시중은행 외화대출 현황에 대한 공동조사를 요구했지만 금감원이 한 달 이상 결정을 미뤄 결국 무산됐다. 이후 청와대가 직접 공동조사 파행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금감원도 의견서에서 한은의 배타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작년 11월과 올해 1월 한은의 외환전산망 일부 자료를 은행연합회와 공유할 것을 요청했다. 은행들의 업무 부담을 덜고 파생상품 거래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은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며 이를 거부했다는 것. 금감원은 작년 9월에도 환투기 세력을 적발하기 위해 외환전산망 자료를 이용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금감원은 의견서에서 한은이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작년 11월 한은은 100억 달러 규모의 수출입금융 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1억5000만 달러 집행에 그쳤다. 반면 한국수출입은행은 같은 기간 100억 달러(110억 달러 목표)를 지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은은 내부 절차가 복잡하고 구비 서류가 많아 지원 실적이 미미하다”며 “공무원보다 더 관료적”이라고 주장했다.

▽한은법 개정 공방=정부와 중앙은행 간 대립과 갈등은 중앙은행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국가라면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금융위기 속에서도 업무영역 다툼을 벌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법을 고쳐서라도 양측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은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도 이 같은 취지를 담고 있다. 한은은 의견서에서 “통화정책 수행에 필요한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일 뿐 감독권 혼선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감원은 이번 법 개정을 한은의 영토 확장 시도로 보고 있어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재정위는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개정안 처리 여부를 결정한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관련동영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