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동화약품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경기 안양시 만안구 동화약품 안양공장의 까스활명수 생산 모습. 까스활명수는 지금도 연 1억 병을 생산하는 제약업계의 ‘스테디셀러’다. 사진 제공 동화약품
경기 안양시 만안구 동화약품 안양공장의 까스활명수 생산 모습. 까스활명수는 지금도 연 1억 병을 생산하는 제약업계의 ‘스테디셀러’다. 사진 제공 동화약품
일편단심 ‘활명수’… 112년 1등 브랜드 철저한 관리

4일부터 바뀐 ‘Biz Weekend(비즈 위크엔드)’ 지면에 매주 ‘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 기업들의 장수 비결을 살펴보고 100년 후에도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한국 최초의 제조업체. 국내 최장수 상장(上場) 기업. 한국 최초 등록상표인 ‘부채표’를 가진 기업……. 여기에 하나 더.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기업. 눈치 빠른 독자들은 여기까지 설명하면 “아아, 그 회사” 하고 눈치 챘을 것이다. ‘부채표 활명수’의 동화약품이다. 동화약품처럼 최초 기록이 많은 기업도 드물다.

동화약품은 1897년 동화약방으로 설립된 이후 1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내 기업이다. 시작은 두산그룹의 전신인 ‘박승직상회’보다 1년 뒤졌지만 112년 동안 같은 장소(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같은 상호(동화)로 동일한 제품(활명수)을 생산하고 있다. 동화약품이 치열한 국내 제약업계에서 100년이 넘게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동화약품의 첫 번째 장수 비결로는 ‘블루오션 선점’과 ‘활명수 브랜드’가 꼽힌다. 동화약품은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질병인 소화불량 치료제 시장을 선점해 장수할 수 있었다. 창립자인 민병호 선생이 국내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한 1897년에도 한국인의 식습관은 좋지 않았다. 짜고 매운 음식을 빨리 먹는 습관이 있었던 것. 당시에는 급체로 사망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19세기 말 활동했던 캐나다 출신 선교의사 애비슨이 ‘한국인은 많은 양의 식사를 너무 빨리 먹기 때문에 위장병이 많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동화약품은 활명수 개발로 전 국민적인 수요가 있는 소화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활명수는 1897년 첫 시판 이후 112년째 소화제 국내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저작권의 개념이 없던 1910년대부터 ‘생명수’, ‘활명액’, ‘활명회생수’ 등 이름도 비슷한 수많은 유사 브랜드가 생겼지만 누구도 활명수를 넘지 못했다.

지금도 활명수는 연간 1억 병 생산에 연매출 400억 원,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는 확고한 1등 제품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 학장은 “활명수는 1897년 시작 당시부터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며 “사람을 살리는 물(활명수)이라는 좋은 ‘네이밍’에 이어 100년 이상 브랜드 관리를 철저하게 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무리한 외형 확장을 자제하고 한 우물만 파는 정도 경영도 동화약품의 장수 요인으로 꼽힌다. 여러 기업이 이 업종 저 업종으로 사세(社勢)를 확장하던 1970∼80년대의 성장 분위기에서도 동화약품은 제약 외길을 고집했다. 조창수 동화약품 사장은 “‘제약보국(製藥報國)’이라는 선대 회장들의 각오가 무척 투철했다”며 “사업을 무리해서 늘려 이윤을 얻기보다는 좋은 약을 만들어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장수기업의 조건’과 일치한다. 창립 1400년이 넘은 일본 건축기업 곤고구미(金剛組)처럼 가업을 잇는 작은 기업이 장수한다는 설명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도 최근 한 간담회에서 “오래 살아남는 기업은 공룡 같은 거대 기업이 아니라 곤충처럼 잽싼 작은 기업”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사내에서는 동화약품이 확장을 자제하고 사회봉사에 나서는 정신을 초대 사장인 민강 사장과 5대 사장인 윤창식 사장의 경영 방침에서 찾는다. 민강 사장은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임정의 국내 연락책인 서울연통부 책임자를 지내다 1930년대 옥사한 독립운동가다. 윤창식 사장도 독립단체인 신간회 간부를 지냈다. 예 학장은 “역대 동화약품 경영진은 회사를 사회적 ‘공기(公器)’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단기간엔 부침이 있더라도 결국 적극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이 장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동화약품 약사(略史)

―1897년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 를 발매하며 동화약방 창업

―1910년 특허국에 부채표 상표등록

―1962년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 로 상호 변경

―1967년 까스활명수 발매

―1996년 한국 기네스 기록 4개 부문 등재(국내 최고·最古 제조업체 및 제약회사, 가장 오래된 등록상표로 부채표, 최장수 의약품 부문에 활명수)

―2008년 윤도준 회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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