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체질’ 한국경제, 위기설 돌자 또 휘청

  • 입력 2009년 3월 2일 22시 00분


단기외채 크게 늘고 동유럽 위기 ‘내우외환'

3월 금융시장이 원화 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는 '블랙 먼데이'로 출발했다. 미국과 유럽발(發) 금융 불안과 높은 대외 의존도와 단기 외채가 많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약점과 맞물리면서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는 지난해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속되고 있고 국내외 경제 여건이 여러모로 악화된 3월이 그중 한 고비일 뿐"이라며 과민반응을 경계했다.

정부 당국은 지난해 하반기처럼 한국의 외화 유동성을 문제 삼는 해외 언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 자료를 내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다시 신흥시장에서 빠져 나가는 달러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는 가운데 시티그룹, AIG 등의 금융회사 구제에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면 '달러 가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달러 자금이 미국의 부실금융사 구제 등에 빨려 들어가 상업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의 자금 유입이 줄고 이에 따라 한국 등 신흥국가의 달러 자금줄을 조이게 된다는 것.

동유럽 국가의 경제 위기도 국제 금융시장의 안전자산 선호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동유럽 국가에 돈을 빌려준 서유럽 은행이 무너지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증시에서도 외국인들은 2일까지 15거래일 연속 순매도행진을 이어갔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위험기피 현상으로 신흥시장 채권의 가산금리(신흥시장 채권지수+스프레드)가 2007년 중반 1.6%포인트에서 최근 6.5%포인트로 확대됐다. 위험이 더 커졌으니 그만큼 웃돈을 더 얹어 줘야 한다는 뜻이다.

●단기외채가 '위기설'의 진원지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의 해외 언론은 지난해 하반기처럼 한국의 단기외채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1년 내에 갚아야 할 외채(유동외채)가 외환보유액(약 2017억 달러)에 버금갈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동외채는 2005년 말 864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1940억 달러로 늘었다.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 비율도 같은 기간 41.1%에서 96.4%로 급증했다. 숫자로만 보면 적신호가 켜진 것은 분명하다.

외환당국은 지난해처럼 "외채 중에는 조선사가 환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미리 선물환을 팔아놓은 환헤지용 외채가 많은데도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강조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외채로 잡히지만 해외에서 선박대금이 들어오면 저절로 사라지는 빚이라는 것. 조선사의 환헤지용 외채(390억 달러)만 빼도 유동외채 비율은 77%로 떨어진다.

은행권의 외화유동성 비율도 지난해 10월말 98.3%에서 올해 2월26일 103.2%로 높아졌다. 3개월 내에 갚아야 할 외채보다 동원할 수 있는 달러가 더 많다는 뜻이다.

●국제금융시장 안정과 달러 조달이 관건

3월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 1월 현재 기준으로 이달에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은행의 외화차입금이 55억8000만 달러로 올해 만기분(245억4000만 달러)의 22.7%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규모는 예년보다 작을 것으로 보이지만 외국인의 주식 배당금 송금도 이달 말에 이뤄진다. 해외로 나갈 달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은 "금년 중 만기가 돌아오는 외화차입금 가운데 리만사태 직후 수준의 차환만 이뤄져도 외환보유액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동유럽에 대출이 많은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서유럽 국가 소재 은행에 대한 우리나라 금융권의 차입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고 이달 중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서해에서의도발 가능성 등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해소되고 국내 은행의 달러 차입이 본격 재개된다면 위기설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경상수지가 3월에도 흑자 기조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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