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동산 시장은 ‘윈도 쇼핑중’

  • 입력 2009년 1월 4일 18시 59분


"요즘 매수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는데 전화가 오면 '직접 오시라'고 하고 끊습니다.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다 받아주면 일도 못하고 입만 아프니까요."(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S공인 사장)

"지난해 1년 내내 끊겼던 방문객과 전화문의가 연말연시를 전후해 하루 평균 5배 정도로 늘었어요. 그런데 거래는 다시 뜸해졌습니다."(서울 송파구 잠실동 B공인 사장)

지난달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거래가 잠깐 살아났던 서울 강남 부동산시장에 최근 매수문의는 부쩍 느는데 거래는 없는 이른바 '윈도우 쇼핑(window shopping)'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

저가매수 기회를 노리는 대기 수요자들로 붐비지만 살피기만 할 뿐 실제 계약은 거의 성사되지 않는 게 특징. 이 영향으로 매매 호가(呼價)가 오르고 집 주인들이 매물 회수에 나서면서 거래 공백은 더 커지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문의 손님은 북적

새해 첫 업무일인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고객과 중개업소 사장 사이에 매수 상담이 오갔다.

"강남 아파트 값이 많이 내리긴 했는데 몇 달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도 있고…."(고객)

"외환위기 때도 그렇게 망설이다 후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정도 바닥권에서 들어가는 게 맞아요."(사장)

30여분 간 상담을 마친 이 여성은 "아직은 자신이 없다"며 중개업소를 나갔다. 이날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의 중개업소에선 3곳 중 2곳 꼴로 상담을 하는 고객들이 눈에 띄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변의 중개업소에도 매수문의가 이어졌다. K공인 사장은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꼭 전화해서 물어보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이제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안다"며 "결정은 안 하고 묻기만 해 짜증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매수문의가 증가하면서 강남권에서는 최근 몇 주일 사이에 호가가 수천만 원씩 뛴 곳이 있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112㎡(34평형)는 지난달 7억8000만 원 선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8억5000만~9억 원 선까지 호가가 올랐다. 매도자들도 투기지역 해제 등 추가적인 규제 완화에 기대를 품고 매물을 거둬들이는 중이다.

이런 흐름은 강남 아파트 값의 하락폭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지난달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의 주간 아파트 값 평균상승률은 첫째 주 ―1.25%, 셋째 주 ―0.56%, 다섯째 주 ―0.02% 등으로 하락폭이 크게 줄었다. 강남구는 지난달 다섯째 주에 0.07% 올랐다.

●매수자들, 돈과 자신 없어 머뭇

강남 아파트에 관심을 보이는 대기수요자들이 크게 늘었는데도 거래가 다시 뜸해진 것은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는 고점(高點)이었던 2006년 12월에 비해 20~40%가량 급락했지만 경기침체 심화에 따른 부동산가격 추가 급락 우려는 여전하다.

수요자들의 자금줄이 마른 것도 한 요인. 지금 당장 계약을 하고 싶어도 사는 집이 팔리지 않거나 반토막난 펀드, 주식에 돈이 묶여 있다. 여기에다 강남권은 대출규제가 풀리지 않아 자금 동원도 쉽지 않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수요자들은 값이 싸진 강남 아파트를 보면서 군침은 많이 흘리지만 집값이 추가 급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강남 아파트 시장은 '바닥권'이란 인식과 '추가 급락' 우려가 팽팽히 맞서 있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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