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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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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초 증시 급락-환율 급등… “예측불허 지켜볼수밖에”
‘외환위기’ 학습효과에 당국 적극대응으로 패닉상황 막아
“온종일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입니다. 어지러워서 멀미가 날 지경이네요.”
1억 원가량을 주식에 직접 투자하고 있는 개인투자자 김모(36·경기 성남시 분당구) 씨는 30일 미국발(發) 초대형 악재로 폭락세로 개장했던 한국 증시가 소폭 하락으로 마감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과연 시장 예측이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마저 든다”며 “불가항력적인 해외 변수가 쉴 새 없이 밀어닥치다 보니 관망하는 것 외에 별 대안이 없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미국 하원의 구제금융안 부결’이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30일 한국 증시는 하루 새 폭락과 반등으로 출렁거리며 지옥의 문턱을 오갔다. 외환시장도 개장 직후 원-달러 환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패닉’(심리적 공황)으로 치닫는 듯했지만 환율 급등에 대한 경계감 등으로 안정세를 되찾았다. 외환위기 학습효과로 한국의 투자자들이 오히려 금융위기에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증시 의외의 선방
예상치 못한 악재로 전날 미국 뉴욕 증시가 사상 최대치로 폭락하면서 한국 증시도 직격탄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개장 직후 1,400 선이 힘없이 무너진 코스피는 개장 후 4분쯤에는 79.64포인트(5.47%)까지 폭락했다.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외국인투자가들은 쉴 새 없이 매물을 쏟아냈고, 당황한 일부 개인투자자들도 추격 매도에 가세했다.
하지만 폭락장세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구제금융안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키로 했다는 외신 등이 전해지면서 개장 후 30분부터 차츰 안정세로 돌아섰다.
오전에 투자자들로 북적였던 서울 시내 증권사 객장들도 오후 들어서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우리투자증권 강남대로WMC지점 민혜성 차장은 “다들 예상을 해서인지 개장 후에 분위기가 오히려 차분했다”며 “구제금융안이 가결될 것에 기대하는 투자자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도 원-달러 환율이 개장 4분 만에 41.20원 오른 1230원으로 급등하는 등 장 초반에는 불안이 계속됐다.
시중은행 외환딜러들은 “환율이 치솟는데 일손을 놓고 시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환율이 7거래일 연속 오르면서 은행 창구에서도 “달러를 바꿔 달라”는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하지만 “달러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경계감이 형성되면서 달러당 1220원대에서 달러 사자 주문이 끊겼고, 오후 들어 시장은 전날보다 더 차분해졌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증시의 낙폭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환율 급등에 대한 부담감으로 오후 들어 안정을 되찾았지만 상황을 크게 바꿀 호재가 없다는 점이 불안 요인”이라고 말했다.
○“결국 통과될 것” 기대감도 작용
코스피는 이날 0.57% 하락해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6.98% 폭락한 것에 비해서 하락 폭이 훨씬 작았다. 뉴욕 증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최근 흐름에 비춰보면 상당히 선방함 셈.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안이 결국 의회를 통과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던 데다 공(空)매도 금지 등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투자심리가 심하게 위축되지 않은 점을 선방 이유로 꼽았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의 투자자들은 미국의 투자자들과는 달리 금융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학습한 바 있다”며 “뉴욕 증시는 장중에 구제금융안 부결 소식이 전해져 과민하게 반응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증시는 변동성이 큰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미국 금융시장과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는 것이 향후 증시 흐름의 최대 변수”라며 “앞으로 급등락이 반복될 때 어떤 저점을 기반으로 증시가 버텨 주느냐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박 용 기자 parky@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