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경계 위에 펼쳐진 ‘텅빈 이상향’

  • 입력 2008년 9월 10일 16시 44분


경계 08-13, 91x60.6cm Oil on Canvas, 2008
경계 08-13, 91x60.6cm Oil on Canvas, 2008
경계 08-13, 91x60.6cm Oil on Canvas, 2008
경계 08-13, 91x60.6cm Oil on Canvas, 2008
- 안성규 개인전 ‘경계’ … 16일까지 안단테 갤러리

- 9대1의 파격적인 인위적 공간배치로 추상성 강조

<편집자주> 회화적 공간과 시각적 구조에 대해 집중적으로 작업해 온 작가 안성규가 오는 9월 16일까지 안단테 갤러리에서 ‘경계’란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지층면의 경계에 시각이 집중되도록 5대3의 일반적 구도가 아닌 9대1이라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화면 구도를 이끌어 냄으로써 시각적 프레임을 바꾼 작가의 작품은 사실적 형상의 표현에 있어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작가의 회화 공간을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의 해설을 통해 바라본다.

21세기 판 극동 아틀란티스 재현: 수심 아래 침잠한 아파트 단지의 전설

10년 전 그가 제작한 <기념비> 연작은 종심 깊게 펼쳐진 황무지 위로 허름한 가옥 한 채를 근경에서 잡은 유화 작업들이다. 대략 7년 전 미술대학의 복도 한 켠에 백호는 됨 직한 <기념비> 몇 점을 세워둔 걸 우연히 구경한 적이 있다. 안 그래도 한기 감도는 미대 건물의 냉랭함과 즉물적으로 묘사된 봉천동의 허름한 어느 판잣집 그림은 서늘한 인상을 공유하는 듯 했다. 더군다나 가옥이기보다 차라리 재활용 합판과 금이 잔뜩 간 시멘트의 ‘덩어리’에 가까웠던 판잣집의 형식미는 그림 속에서 하나같이 이웃 없이 홀로 고립된 채 외떨어져 있었고, 그것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난파 직전의 돛단배처럼 보였다.

<기념비>가 정중앙에서 판잣집을 화면의 대략 3할 정도 지분 배당 한데 비해, 동일한 작가의 손에서 제작된 <경계>는 정중앙은 물론 전체 화면의 약 9할을 빈 공간(설령 그것이 하늘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이라 할지라도)에 내주고 말았고, 정작 건물은 한 채도 아닌 수십 수백 채를 화면 하단에 깔아놓듯 그린 탓에 건물 고유의 독립성마저 훼손한 느낌이다. <기념비>의 경관이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것처럼, <경계>의 그것 역시 수심(水心)을 담아낸 것 같다.

캔버스 밑면에 도열한 아파트들은 마치 바다의 밑면에 가라앉은 것으로 봐도 하자가 없다. 폭풍우를 만난 난파선이나(<기념비>의 경우), 이미 바다에 잠겨버린 아파트들이나(<경계>의 경우), 모두 지표면을 해수면으로, 또는 하늘을 수심으로 오독하게 만드는 구성을 취한다. 환영(幻影)의 바다가 10년 전 쓸어간 게 봉천동 재개발지구였다면, 10년 후 이 바다는 강남 아파트 단지 위를 덮치고 있다.

앞서 안성규의 지난 작업 <기념비>와 근작 <경계>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면서 나는 두 작업을 재개발의 해일과 연관 지으려 했는데, <기념비>가 필시 우중충한 바다처럼 보인 건 사실인데, <경계>의 드높은 하늘이 꼭 수심을 떠올리는 건 아니다. 그건 필자의 상상력일 뿐 실제로 그렇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2008년 [안성규전 - 경계]의 전시장 설치 정경은 그림 속 장면들을 한낱 아파트 단지의 무료한 ‘풍경’ 정도로 간주하게 놔두지는 않는 듯하다. <경계>는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를 장르상 풍경화 보다는 정물화 다루듯 취급한다. 화폭마다 각기 다른 아파트와 가옥들의 상단만 절개되어 화폭의 밑단에 내리 깔려있고, 그 위로 망망대해 같은 창공이 배치되는 조형적 구조가 반복된다. 안성규의 이런 ‘오브제가 있는’ 색면 추상은 마치 ‘하얀 까마귀’나 ‘고요한 소음공해’만큼이나 언어도단이지만, 나름 유의미하게 제시된다.

오브제가 있는 색면 추상같은 그림이 가능할 수 있는 까닭은 도심의 풍경을 풍경이 아니라 정물 다루듯 가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경계’라는 의미심장한 용어를 자신의 작업 키워드로 채택할 때 하늘과 건물 스카이라인 사이의 물리적 경계와 그것이 함의하는 자연과 인공의 이분법을 염두에 두었으리라. 그러나 작품에서 경계는 인위적인 프레이밍(framing)이라는 용도로 현현한다. 그 과정을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경계> 연작은 얼핏 나무랄 데 없이 평면 회화의 보편 룰을 이행하는 듯하나, 그 제작 공정만은 결코 그렇지 않다. 제작을 위한 드로잉이 선행되는 거야 일반 회화와 다르지 않지만, 안성규에게 드로잉은 습작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에 가까운 사진 촬영을 의미한다.

동작대교 위에서 신속하게 포착된 한신 아파트와 강북 고수부지에서 건너본 강남 아파트촌. 또는 강남에서 촬영된 한남동 주택가는 원화를 위한 밑그림, 즉 드로잉에 속한다. 하지만 보통의 밑그림과는 달리 <경계>를 위해 마련된 수백 장의 드로잉 ‘인화물’은 완성작을 위해 단지 참조되는 정도가 아니라, 디지털 공정을 거쳐 화면의 일부로 그대로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하늘과 건물 간의 9대1 비율이 프레이밍 된다.

이것이 작품에서 경계 긋기가 실제로 개입하는 전모이며, 도심의 ‘풍경’이 마치 ‘정물’처럼 처리되고, ‘색면 추상’처럼 가공되는 과정이다. 상하 9대1로 프레이밍 하면서 아파트와 건물은 절반 이상을 화폭의 경계면 아래로 묻어버리고 만다.

정물화의 전통에서 오브제가 인위적으로 탁자 위에 배열되듯, 육중한 시멘트와 철근으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의 물리적 무게감과 다세대의 소란스러움은 온 데 간 데 없고, 가까스로 ‘아파트 임’을 표시할 수 있는 정도의 최소한의 단서만 남겨둔다. 그 단서라 함은 인적이 사라진 무표정한 아파트 상층의 일부분과 아파트 측면에 큼지막하게 적힌 아파트 동 번호다.

작가에 의해 편집된 아파트의 일부분을 통해, 관람자는 아파트 전체를 쉽게 이해하게 되는데 이유는 자명하다. <기념비>에서 봉천동의 을씨년스러운 주거 환경이 인위적으로 가공된 황량한 바다 같은 배경화면과 어울리듯이, 대한민국에서 거주 보다는 투기가 목적인 아파트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주거 형태의 전체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일부의 관찰로도 충분히 ‘투기 대상으로서의 아파트들’ 임을 지각 할 수 있는 탓이다. 설령 신축 아파트마다 똑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동일한 플랫(flat)으로 층 지워진 다세대 축조물들의 구조란 대개가 고만고만하다. 그러니 아파트의 얼굴은 동일할 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듯 대동소이한 부동산적 광경의 동형성은 심지어 아파트 내 거주자들의 사고방식도 똑같이 동일한 건 아닐까하는 전혀 개연성 없는 논리로 도약하게 만든다. 아파트의 무표정한 풍경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오해다. 다시 <경계>의 화면 구성을 수심(水心)에 비유하자. 화면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허공은 밑바닥에 깔린 아파트에 대한 허영심과 부질없는 이상으로 채워진 공간처럼 보인다.

추상의 전통이 폭력적인 까닭은 그것이 어느 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즉 침묵으로 모두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치로 <경계>의 화면 속 9할의 허공은 평온하고 낭만적이고 숭고하지만, 궁극에서 폭력적이다. 그것은 아파트라는 공간에 투영된 동시대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의 스카이라인은 투기의 욕망과 허영을 드러내며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낸다.

대서양에 존재했다는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Atlantis)는 플라톤에 의해 최초로 언급되고 기술된 걸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것조차 플라톤의 시대보다도 9천년 앞서 자연재해로 인해 단 하루 만에 사라졌다는 ‘믿지 못할’ 서사 구조를 갖기에 신뢰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리라. 그렇지만 설득력 없는 기원전의 전승이 작금의 숱한 예술작품에 부단히 차용되었고, 실존하지 않는 아틀란티스는 사회주의자에게는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모델로, 독일 나치 이론가들에게는 그들의 이상향을 실현할 메타포로 인용했다.

몰입과 열광은 현실보다 이상에 반응하는 법이어서 아틀란티스는 실존하지 않고서도 군림하는 이상향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동시대성은 아파트 단지로 넘쳐나는 시멘트 재질의 아틀란티스 대륙을 통해 수시로 확인된다. 수면 속에 깊이 잠겨 화폭에서 1할만 드러난 아파트 아틀란티스의 허망함은 아파트 스카이라인의 경계 위로 부담스럽게 펼쳐진 9할 치의 빈 허공이 대신 답변해 주고 있다.

* 글 : 반이정/미술평론가

● 안성규 개인전 '경계'

전시기간 : 9월2일 ~ 9월16일

장소 :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안단테 갤러리(02-735-3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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