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사상 첫 ‘독립경영 체제’ 시험대 올라

  • 입력 2008년 6월 26일 02시 58분


《삼성그룹은 25일 이건희 회장의 완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사장단협의회 출범을 뼈대로 하는 경영쇄신안 후속조치를 통해 4월 22일 경영쇄신안 발표 때 약속했던 사항을 대부분 이행했다. 삼성은 다음 달 1일부터 ‘계열사 독립경영’이라는 새로운 경영체제로 본격 전환하게 된다. 삼성은 그룹 경영체제의 장점을 최소한이나마 유지하기 위해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 기구는 말 그대로 구속력이 없는 협의체여서 각 계열사에 대한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나 신규사업 진출 주체 논란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동 대응이나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경영체제 개편에 따른 진통도 예상된다.》

투명성 높아졌지만 ‘컨트롤타워 부재’ 우려

이회장 사원증까지 반납… 원로참모들 퇴진

투자조정委 - 브랜드委서 굵직한 현안 협의

○ ‘포스트 이건희’ 체제 막 올라

이날 내놓은 경영쇄신안 후속조치를 통해 1987년 이후 21년간 삼성을 이끌어 온 이 회장은 말 그대로 ‘사원증’까지 반납하게 된다.

또 이 회장을 보좌하면서 전략기획실을 이끌어 온 이학수(부회장) 전략기획실장과 김인주(사장) 전략지원팀장 등 그룹 핵심 경영자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에 따라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삼성의 ‘삼각편대 경영’은 두 축을 잃으면서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 대신 삼성은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본격화하되 큰 틀의 계열사 간 업무 조정이나 협의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을 좌장(座長)으로 하면서 40명의 계열사 사장이 참석하는 사장단협의회에서 하기로 했다.

또 계열사 간 사업·투자조정이나 통합브랜드 관리는 안건이 있을 때마다 각각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신설하는 비상설 기구인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에서 협의한다.

전자나 금융 등 관련 업종 계열사 간의 공동 의사결정이나 시너지효과 창출은 삼성전자나 삼성생명 등 업종 주력회사에서 담당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전무 시대를 주도할 핵심 경영진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삼성 독립경영 체제의 앞날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어렵다.

삼성 계열사 CEO들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지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신경영’ 리더십을 빼놓고는 오늘날의 삼성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삼성 관련 주가가 일제히 약세를 보인 것도 이런 우려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사장단협의회 구속력 없는 협의체 기구

이번 조치가 그룹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전략기획실 해체에 따른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사장단협의회가 출범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구속력이 없는 협의체 기구일 뿐이어서 기존의 전략기획실 기능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특히 삼성 내부에서는 후계구도 및 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데다 그룹 경영체제도 약화된 상황에서 주요 계열사가 글로벌기업이나 펀드의 적대적 M&A 시도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사장단협의회에서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하더라도 독립경영 체제에서는 각 계열사 사장이 주주와 이사회의 의사에 반해 측면 지원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휴대전화, 액정표시장치(LCD) 등 핵심 사업에 필수적인 ‘스피드경영’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이 회장의 뚝심으로 반도체사업 초창기 17년 적자를 견뎌낸 사례에서 보듯 장기적인 안목의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고 △그룹 전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시적인 사업 구조조정 기능이 상실되고 △계열사 간 지식과 기술 공유시스템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경영체제가 순항하지 못하면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며 “사장단협의회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향후 운영방안을 보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히 인사 부문과 관련해서는 이번 조치가 ‘잠정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 영상취재: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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