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심상찮다]<하>민간 전문가들이 말하는 해법

  • 입력 2008년 5월 1일 02시 56분


“성장 조급증 버리고 중장기 동력 비축부터”

성장-물가-경상수지 우선순위 면밀히 따져야

‘투자 유도→일자리 증가’ 출발점은 규제 완화

정부는 분명한 정책 제시로 시장에 신뢰줘야

안팎으로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경기 위축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부는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감세, 재정지출 확대, 금리 인하, 원화가치 하락 등 성장세를 회복하기 위한 카드는 모두 동원하겠다는 태세다.

정부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기적으로 경기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하는 민간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불씨가 꺼져 온 투자 마인드와 성장동력을 다시 살리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장단기 정책 조합으로 성장동력 확충

현재 예상 밖으로 급격하게 경기 둔화가 심화되는 것은 투자와 소비 등 내수 침체가 심각하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위축되지 않도록 내수를 살리기 위한 선제적 대응 노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금리 및 환율정책을 활용하고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통해 재정 지출을 늘리는 한편 기금과 공기업의 투자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대내외 여건은 정부가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정책의 우선순위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권고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경상수지와 물가는 고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 수출품의 가격 상승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며 “소비와 투자 등 내수 기반을 확충해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을 추구할 경우 경제에 거품이 끼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불가피하다며 단기 성장률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키우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가 전 세계적으로 급등하는 지금은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건수 위주보다 ‘전봇대’ 뽑아야

민간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일자리 증가→소득 증가→내수 활성화→기업 수익 증가→일자리 증가’라는 경제의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도록 중장기적인 대책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건수 위주의 규제 개혁보다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거나 기업에 쓸데없는 부담을 줘온 핵심 규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 민간경제가 정부 규제로 부담해야 하는 규제비용은 78조1000억 원으로 그해 국내총생산(GDP)의 9.2%를 차지했다. 국내 기업체당 평균 2436만 원의 규제비용을 지출한 셈. 규제비용 중에서 가격, 생산, 시장 진입에 대한 개입으로 발생한 것이 65조 원을 차지했다.

정부도 이 같은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창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각종 인허가 과정을 단축시키기로 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규제 개혁, 기초질서 확립 등의 주요 정책을 우선순위를 가려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내년부터 경제가 살아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성장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업은 구인난을 겪고 있는데 노동시장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위해 취업을 미루는 ‘미스매치(mismatch)’ 현상과 유통 및 생산자서비스업의 일자리 감소가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로 지적됐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시장의 미스매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업훈련 체계를 정비하고 직업 및 평생교육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며 “유통서비스업 퇴출 인력의 전직 지원, 각종 자격시험 등의 진입규제 조정, 사회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여성 인력의 활용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장이 정부를 믿게 하라’

경제 전문가들은 “정책을 쏟아내기에 앞서 정부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책의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정책 추진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데 지금은 정부 스스로 그런 선순환 고리를 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최근 금리 및 환율 수준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듯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금융정책의 신뢰도가 뚝 떨어졌다.

A선물회사의 채권 딜러는 “강만수 재정부 장관이 취임 후 첫 브리핑을 한 지난달 15일 오후 채권시장에 ‘한은 총재와 대립각을 세워온 강 장관이 금리 인하를 주장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채권 가격이 크게 출렁거렸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날 강 장관은 금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힘들다 보니 시장의 불확실성만 커진 셈이다.

기존에 밝힌 정책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경제성장률과 관련해 말을 조금씩 바꾸기만 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중장기 성장률 목표치를 분명히 제시한 뒤 경제의 큰 그림을 그려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율되지 않은 당국자의 목소리가 시장에 혼돈을 주지 않도록 정책 조정 기능을 살리는 한편 ‘성장 조급증’을 버리고 공공 부문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추경 편성 논란 왜

“경기 하강 예상보다 빨라 재정 투입으로 떠받쳐야”

vs

“물가 상승 부작용만 초래 감세로 민간지출 늘려야”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을 6월 열릴 18대 국회에 제출하기로 함에 따라 추경 편성이 가능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부가 추경 편성을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는 경기 하강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경기가 하강할 때 서민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재정부가 “경기가 정점을 통과해 하강 국면에 들어섰다”고 선언한 것도 추경 편성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중앙정부가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 15조3000여 억 원 중 지방교부세 정산, 국가채무 상환 등을 하고 남은 돈은 4조8000여억 원. 이 중 3조 원을 재정 지출에 쓸 때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이상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계산이다.

또 감세와 규제 완화는 실행이 되더라도 기업이 실제로 투자에 나설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재정 투입은 효과가 빠르다. 성장률 수치에 민감한 정부가 추경에 목을 매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추경을 하는 것은 임시변통이며,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기 부양을 해야겠다면 민간 지출을 늘리는 감세가 낫다”며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제상황에서 경기 부양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추경 추진에 가장 큰 걸림돌은 국회의 반대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추경 편성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 정책위의장의 임기가 이달 말로 끝나고 새 정책위가 구성되면 한나라당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관측이다. 6월 18대 국회가 들어서면 한나라당 의석수도 크게 늘어난다.

국가재정법이 추경 편성의 사유를 전쟁과 대규모 자연재해, 중대한 대내외 여건 변화 등으로 엄격히 정하고 있는 것도 풀고 가야 할 문제다. 정부는 이번 추경 편성을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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