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침체기 ‘큰손’들은 어디에 돈 굴리나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상가… 오피스텔… 부동산 ‘입질’

금융자산만 100억 원대인 대기업 임원 S(50) 씨는 최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55억 원짜리 상가빌딩을 샀다. 연간 임대료 수입은 3억6000만 원. 은행 일반 정기예금 금리보다 연 1%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다. S 씨는 “펀드투자를 선호했지만 요즘 수익률이 너무 떨어졌고, 상업용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전망이 밝은 것 같아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최근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돈을 맡긴 한국 부자들의 재테크 방식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발(發) 신용경색으로 글로벌 증시 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지난해까지 많은 수익을 냈던 펀드 외에 새 투자처를 찾고 있는 것.

○ 부동산, 세(稅)테크에 눈 돌려

최근 은행 PB센터에는 1가구 2주택에 따른 양도소득세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상가, 오피스텔 구입 시기를 문의하는 고객이 지난해에 비해 부쩍 늘었다. 국민은행 압구정 PB센터 신동일 팀장은 “금융자산을 50억 원 이상 가진 고객 가운데 수익성 부동산 매물을 찾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들 부자는 펀드에서 돈을 빼내기보다 추가 유동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은행 PB들은 “부자들은 절대 손해 보면서 펀드를 환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시중은행의 PB센터에서 부쩍 바빠진 사람들은 은행 소속 세무사들이다. 미래에셋증권 최용준(세무사) 세무컨설팀 팀장은 “펀드 평가액이 낮아지면 증여세도 적게 낼 수 있어 침체기에 자녀들에게 펀드나 주식증여를 하고 싶다는 문의가 제법 많다”고 말했다.

○ “낮은 주가를 투자의 기회로”

안정적으로 자금을 굴릴 수 있는 방안을 찾던 유모(65·여) 씨는 한 달 전 1억 원을 SK텔레콤과 에쓰오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넣었다. 법무사 대표인 김모(71) 씨는 채권형 펀드에 들어있던 1억5000만 원을 빼내 최근 주가연계펀드(ELF)로 갈아탔다.

최근 이처럼 자금을 채권형 펀드에서 주가지수 변동에 실적이 따라가는 ELS, ELF 등으로 옮기는 부자가 적지 않다.

하나대투증권 강남중앙지점 송기호 팀장은 “상당수의 부자가 국내 주가가 과도하게 빠진 것으로 보고 ELS, ELF에 투자하고 있다”며 “부자들은 안정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개별종목보다 주가지수에 연계된 상품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또 금펀드, 원자재펀드 등 최근 인기를 끌었던 펀드는 변동성이 크다는 이유 때문에 주력 투자대상으로 삼는 부자가 많지 않다.

중견기업 대표 이모(55) 씨는 최근 미국 금융회사에 투자하는 한국투신운용의 ‘한국월드와이드월스트리트투자은행펀드’에 가입했다. 이미 1억5000만 원을 넣었고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여러 차례 나눠 상반기(1∼6월) 중 5억 원을 추가로 넣을 예정이다.

이상봉 우리투자증권 골드넛멤버스 WMC지점 부장은 “해외IB펀드는 해외에 있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연락해 관심을 가지라고 권유하기도 한다”며 “많은 부자가 미국 금융회사들의 주가가 언젠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도움 준 각 금융사 PB들

△국민은행 신동일 이정걸 홍대기 △기업은행 이영이 △신한은행 이관석 임정재 정승희 △우리은행 강희승 박승안 송재호 이영섭 △하나은행 권기남 김영훈 김창수 △대우증권 배진묵 △메리츠증권 오윤관 △미래에셋증권 윤호식 이용규 이형규 △삼성증권 한덕수 △우리투자증권 이상봉 △하나대투증권 송기호 △한국투자증권 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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