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인력 충분한데 왜? 어느 경로로 누구한테?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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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등을 통한 한국전력의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두 가지의 의문을 푸는 데 집중되고 있다.

우선 한전이 자회사에 하청을 주면서 특정업체에 재하청을 주도록 지시했는지, 지시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다. 또 다른 의문은 국가청렴위원회가 ‘과다 계상’이라고 결론 내린 6억 원의 최종 종착역이다.

하지만 한전이 자회사에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관행처럼 특정업체에 재하청을 주도록 요구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수사가 한전의 다른 자회사들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하청업체 왜 지정했나=한전 측은 한전KDN에 하청을 주면서 특정업체에 재하청을 주라고 요청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한전KDN 고위 관계자는 “한전에서 우리에게 하청을 줄 때 ERP업체인 T사에 재하청을 주라고 지시했다”며 “한전의 자회사가 생긴 뒤부터 한전이 자회사에 주는 하청은 거의 이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경찰에 앞서 조사를 벌인 청렴위도 ‘한전KDN은 한전이 T사에 사업을 발주하는 데 중간다리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렴위 조사 결과 T사가 시행했다는 사업에는 한전KDN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지보수 인력을 동원해서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KDN은 한전과 매년 수백억 원의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해 수백 명의 인력을 항상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전KDN이 충분히 자체 인력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업을 굳이 T사에 재하청을 준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한전 관계자는 “한전이 자회사에 주는 하청사업이 재하청되는 과정에서 지급되는 사업비의 일부가 한전 고위층 등으로 건네진다는 소문이 사내에 파다하다”고 말했다.

▽‘과다 계상’ 6억 원의 행방은=청렴위는 8월부터 2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 이번 사업과 관련해 ‘최대 6억 원이 과다 계상돼 지급됐다’고 결론지었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추진된 사업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미 앞서 발주된 다른 사업들과 중복되거나 거의 추진되지 않은 사업이 많아 사실상 ‘허위’ 하청사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렴위는 6억 원의 행방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6억 원이 어느 경로를 통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는 경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야만 한다.

이에 따라 경찰은 우선 청렴위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전과 한전KDN, 재하청업체 T사 사이에 오간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전 안팎에서는 한전 고위층이 이번 비자금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범여권 실세 정치인과 가까운 간부 A 씨와 B 씨 등이 이 사건이 커지지 못하도록 여기 저기 손을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청렴위 조사 과정에서 한전 측으로부터 외압 성격의 전화가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A 씨는 이름이 거론된 정치인을 전혀 모른다며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한전은 1원 한 푼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없는 조직인데 무슨 비자금을 조성하느냐”고 주장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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