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국내 미니기업]소음-떨림 최소화…GM도 반했다

  • 입력 2007년 4월 23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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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의 여파로 문을 닫는 회사가 속출하던 1999년 1월 대구 성서공단에 자리 잡은 삼선정공(현 캐프). 임직원 50여명이 찬바람을 맞으면서 결연한 표정으로 모여 '가두판매 발대식'을 가졌다. 직원들이 길거리로 나가서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에 앞서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

자동차와이프를 만들어 삼성자동차에 납품하던 삼선정공은 1998년 12월 삼성자동차가 생산을 중단하는 바람에 물건을 만들어도 팔 곳이 없게 된 것. 발대식이 끝난 뒤 관리직과 연구 개발 직원들까지 전 직원이 2인 1조가 돼 승용차 뒷 자석과 트렁크에 와이퍼 수백 개를 싣고 전국으로 떠났다.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차를 세워 제품을 팔았다. 자동차 정비 업소를 직접 방문해 "우리 물건 좀 써 달라"고 사정도 했다.

박희철 사장(당시 부장)은 그 때 경기 구리시를 맡아 가두판매에 나섰다.

"당시 2개월 동안 전 직원이 40만개 정도 팔았습니다. 싼 값에 팔아서 밥 먹고 숙박비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었지만 우리 제품이 일반 소비자들한테도 팔린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창립 초창기 닥친 위기를 힘겹게 넘긴 이 회사가 지금은 와이퍼 분야에서 세계 5위 기업으로 성장한 캐프다. 회사 이름은 삼선정공에서 2003년에 현재의 캐프로 바뀌었다.

●와이퍼 시장 세계 5위 기업으로 성장

캐프는 마쓰다와 닛산, 다임러크라이슬러, GM에 생산자주문방식(OEM) 등으로 납품한다. 국내 할인점과 주유소 등에는 '뷰맥스'라는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르노 삼성자동차에 장착되는 모든 와이퍼가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지난해 매출 365억 원에 26억 원의 순익을 올렸다. 매출액의 57%인 153억 원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다. 올해는 매출 730억 원에 484억 원어치를 수출하는 게 목표다.

중국 지사 직원을 포함해 전체 직원은 299명밖에 안 된다. 그러나 세계 굴지의 자동차 부품 회사들과 세계 시장에서 당당하게 겨루고 있는 '최강 미니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삼성자동차 협력 업체로 시작

캐프는 1995년 삼성자동차의 협력업체로 출발했다. 삼성자동차에 와이퍼를 독점 공급하는 대신 국내 다른 자동차 업체와는 거래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해 12월 삼성자동차의 생산 중단으로 시작된 시련은 가혹했지만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 업체에만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에서 벗어나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느낀 것.

해외시장 개척단을 발족시켜 외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제품의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열리는 자동차 부품 전시회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또 할인마트나 주유소, 자동차 정비 업소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소매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완성차 업체에 생산자주문방식으로 대량 공급하는 게 경영에는 도움이 되지만 낮은 인지도와 신생기업이란 단점 때문에 쉽지 않자 둘러 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

미국과 캐나다에서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크라이슬러와 GM 등에도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빠른 성장의 비결은 과감한 연구 개발 투자

와이프는 보기에는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고속 주행을 하면서 와이퍼가 유리 표면에 잘 밀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너무 밀착되면 소음이 나고, 약간만 틈이 벌어지면 떨림이 생기고 제대로 닦이지도 않는다.

박 사장은 "다른 부품과 달리 와이프는 작동 중 떨림이나 소음이 발생하면 운전자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만족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캐프가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연간 매출액의 8%인 30억 원을 R&D에 투자했다. 2006년 상장회사 531개사의 연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평균 2.38%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캐프가 R&D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지 알 수 있다.

과감한 R&D 투자는 세계 4번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플랫 와이퍼'를 생산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보쉬에서 처음 만든 플랫 와이퍼는 불필요한 프레임을 줄여 디자인이 뛰어나고 겨울철에 얼지 않는 등 성능도 우수하다. 독일 벤츠와 아우디의 대형 세단 승용차에 장착된다. '플랫 와이퍼=고급 승용차'의 등식이 성립돼 있다.

일반 와이퍼 보다 50%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리는 플랫 와이퍼는 캐프의 성장에 가속도를 붙이는 새로운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회사인 보쉬를 제치고 미국(3400개)과 캐나다(320개)의 월마트 전 매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도 플랫 와이퍼를 자체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지방 중소기업의 애로

지방에 본사를 둔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없을까.

고병헌 회장은 "우리가 원하는 인재를 채용하지 못하는 점이 힘들고 다른 점은 별로 불편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고 물었더니 고 회장은 "서울보다 월급을 더 주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캐프의 미국 지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 2명도 현지에서 채용한 해외 유학파다. 고 회장은 "필요한 인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다 지원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고병헌회장 “함께 키운 회사…정년은 없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다. 이윤 추구와 성장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캐프 설립자인 고병헌 회장(59)의 경영 이념이다.

고 회장은 "기업이 이윤 추구에 매달리다 보면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해 먼 미래를 내다보고 경영을 할 수 없다"며 "하지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고 말한다.

실제로 캐프는 설립 초창기의 위기를 넘기고 2000년부터는 연간 매출이 30%씩 증가하는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은 오랜 기간 월급쟁이로 일하면서 체득한 것이라고 한다. 고 회장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있다가 47세에 창업했다.

샐러리맨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고 회장은 경영자가 된 이후에도 공장 앞마당에서 직원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먹으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스킨십 경영'은 위기 때 빛을 발했다.

1998년 12월 삼성자동차의 생산 중단으로 재고가 쌓이자 관리직과 연구개발 직원까지 가두판매에 나서는 등 전 직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헤쳐 나갔다. 1999년 월급을 2차례 지급하지 못했지만 아무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고 회장은 "대학 다니던 아들 명의로 신용 대출까지 받았지만 월급을 줄 수 없게 됐는데 회사에 들어와 보니 내 자리에 장미꽃 한 송이와 '사장님 힘 내세요. 우리가 있습니다'는 쪽지가 놓여져 있었다"며 "그걸 보고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캐프에 정년(停年)이 없는 것도 어려울 때 자신을 믿고 따라준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캐프 창립 당시에는 회사 규모가 작고 직원들이 젊어서 정년에 대한 규정이 아예 없었다. 창립할 당시 40대였던 직원들이 50대가 되면서 정년퇴직 연령을 정해야 될 필요성이 생기자 고 회장은 '종신 고용을 원칙으로 한다'고 사규에 못 박았다.

그는 "저와 회사를 믿고 똘똘 뭉쳐서 위기를 넘기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년이 됐다고 나가라고 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공장 입구에는 '영원한 가족'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대구=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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