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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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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장교빌딩에는 크고 작은 해운회사 10여 개가 입주해 있다. 그중 5개가 최근 2년여 사이에 새롭게 둥지를 튼 회사이다. 해운업으로 출발한 C&그룹(옛 세븐마운틴그룹)이 성공가도를 달리자 장교빌딩이 해운업과 ‘궁합’이 맞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해운회사들이 앞 다퉈 이 빌딩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C&그룹 임병석 회장은 1990년 이 빌딩 사무실 한 칸을 빌려 500만 원으로 칠산해운을 창업해 자산 2조 원대의 중견 그룹으로 키웠다. C&그룹은 당분간 본사를 옮기지 않고 ‘전세살이’를 계속할 계획이다. 회사가 뻗어 나가는 데는 좋은 터도 한몫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황이 길어지고 글로벌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풍수지리를 따지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들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혹은 ‘결혼 전에 궁합 보듯 나쁘다는 건 일단 피하는 게 좋다’며 풍수지리 보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랜드와 소송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국제상사를 인수한 에너지 업체 E1(옛 LG칼텍스가스)은 지난해 인수전에 뛰어들기 전 풍수지리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상사를 인수하면 국제센터빌딩을 보유하게 되는 게 꺼림칙했기 때문이라는 것.
국제센터빌딩은 ‘지세가 안 좋아 입주하면 기업이 망한다’는 소문이 난 건물이다. 이 빌딩을 지었던 국제그룹이나 후에 빌딩의 주인이 된 한일그룹이 연거푸 부도가 났다.
E1 측은 “인수합병(M&A) 같은 중요한 일을 풍수 보고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펄쩍 뛰지만, 한 풍수 전문가는 “한 명만으로는 미덥지 않았는지 두어 명한테 물어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미래에셋 사옥 마련 때 지관 동행
기업들은 대체로 기업 이미지 때문에 풍수지리 따지는 것을 숨기지만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서슴없이 ‘풍수 경영’의 효용을 이야기한다.
박 회장은 2000년 서울 강남에 사옥을 마련하기 위해 빌딩을 보러 다니면서 유명한 지관(地官)과 함께 다녔다. 그는 “구릉지인 역삼역 주변에서 테헤란로를 따라 내려온 재물이 모이는 삼성역 사거리가 강남에서는 가장 명당”이라는 지관의 이야기를 듣고 삼성역 사거리 근처에 빌딩을 매입했다.
터가 좋아서인지 2005년부터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면서 뭉칫돈들이 미래에셋에 몰려들었다.
금융계에서는 신한은행의 초고속 성장을 신한은행 본점 터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신한은행 본점은 구한말 조폐 기관인 전환국이 있던 곳. 돈을 찍던 자리에 터를 잡아서 신한은행이 조흥은행과 LG카드를 잇달아 인수하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
○ “여의도는 강바람이 세 웬만해선 버티기 힘들다?”
증권회사 본사는 대부분 서울 여의도에 몰려 있지만 삼성증권 본사는 종로에 있다. 여의도는 터가 안 좋기 때문에 삼성증권이 여의도에 오지 않는다는 게 증권가에서는 정설로 통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여의도는 강바람이 심해서 웬만큼 기가 세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의도 외곽에 본사가 있는 고려증권, 대한생명 등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무너졌고 최근에는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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