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경영]오지의 건설현장… 그곳이 우리 고향이죠

  • 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8분


대우건설 나이지리아 건설 현장에서 지난달 10일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가 풀려난 뒤 최근 나이지리아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 대우건설 최종진 과장.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플랜트 공사관리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우건설 나이지리아 건설 현장에서 지난달 10일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가 풀려난 뒤 최근 나이지리아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 대우건설 최종진 과장.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플랜트 공사관리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종진 과장이 근무했던 나이지리아 바옐사 주의 가스플랜트 건설 공사 현장.
최종진 과장이 근무했던 나이지리아 바옐사 주의 가스플랜트 건설 공사 현장.
《“우리 아빤 항공사 직원이야?”

대우건설 최종진(39) 과장의 쌍둥이 아들, 딸은 아빠의 직업이 기장(機長)인 줄 알았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쌍둥이는 6개월마다 출입국을 거듭하는 아빠가 비행기를 몰고 세계를 누비느라 아주 잠시만 가족과 지낼 수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지난달 10일 최 씨가 나이지리아 공사현장에서 현지 무장단체에 납치됐을 때도 쌍둥이는 아빠와 함께 목욕을 하고 공원에 놀러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최 씨의 아내는 가슴이 메었다.

아내는 생전 처음 새벽예배에 나가 기도했다.

제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13일 새벽. 남편의 활기찬 목소리를 듣고서야 마른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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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는 대우건설에 입사하기 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서 4년여 동안 일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총 270억 달러의 사업비가 투입된 세계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사막 지하에서 뽑아낸 지하수를 지중해 연안 도시로 공급하기 위해 지하 600m 깊이까지 대형 파이프를 매설하는 게 주 공정이었다.

낯선, 그것도 사막 한가운데로 떠난 최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제 막 백일을 넘긴 쌍둥이 남매를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별들이 총총히 박힌 하늘을 바라보며, 적막한 사하라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홀로 숙소에 들어갈 땐 당장이라도 사표를 쓰고 싶었다.

반년 만에 돌아간 집에서 어린아이들이 낯선 아저씨를 보듯 자신을 바라보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렇게 가족과 떨어져 느끼는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영어공부가 이젠 수준급이 돼 영문편지를 자유자재로 쓸 정도가 됐다.

한낮이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사막의 기후는 물론 음식 문제도 최 씨와 동료들을 괴롭혔다. 이슬람 국가에서 금지하는 돼지고기를 들여오다 공항 세관에 붙들리는 일도 있었다.

작업장 안전사고는 아무리 대비해도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최 씨는 “지하에 묻은 파이프가 부식돼 수압(水壓)을 못 이기고 지상으로 튀어 오르는 사고가 간혹 일어났다”며 “동료들과 공사장 근처 모래언덕을 걸을 때마다 파이프가 솟구칠까 봐 두려웠다”고 회고했다.

○ 부족민들과 함께한 나이지리아 현장

최 씨는 지난해 나이지리아 사업소로 옮겼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나이지리아는 리비아의 사하라 사막보다는 살기가 좋았지만 현지인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았다. 사막엔 땅 주인이 따로 없었지만 나이지리아에서는 수백 개의 부족이 서로 밀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투고 있었다.

“자신들의 주장을 무시하면 부족민 전체가 공사현장에 쳐들어가 일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부족들도 있었다.

이들의 위협에 맞서 대우건설 직원들이 선택한 전략은 ‘상생(相生)’이었다.

현지에서 20년 이상 일한 고참 직원들과 함께 부족민들에게 선물도 주고 파티에 초청해 함께 어울리면서 유대감을 쌓았다. 특히 용접 등 비교적 단순한 일감은 외주업체와 계약하지 않고 현지 부족에게 맡겨 그들의 경제생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피랍사태에서도 빛을 발했다.

긴박했던 상황은 대우건설 작업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일부 무장단체 대원이 피랍 직원들을 알아본 뒤 180도 바뀌었다. 괴한들은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 주며 가족 얘기를 나누고 함께 구호를 외치는 등 대우건설 직원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풀려난 직후 ‘다시는 이런 곳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피랍 직원 9명 가운데 최 씨를 포함한 4명은 최근 나이지리아로 돌아갔다.

최 씨의 아내는 “더는 어린 쌍둥이를 혼자 키우고 싶지 않다”며 간곡히 말렸지만 현장에 남겨둔 일을 그냥 버려둘 수 없다는 남편의 강력한 의지에 지고 말았다.

최 씨는 “가족을 생각하면 국내에서 안주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아직은 좀 더 이 길을 가고 싶다”며 “플랜트 공사관리(CM)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글=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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