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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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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봉 노사협력팀장은 “회사의 모든 우선순위를 현장에 두고 나서 생긴 변화”라고 설명했다.
화장실만이 아니다. 조립라인 2부 1과의 이완근(41) 씨는 “어디 가도 이렇게 깨끗한 작업장은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더웠던 작업장이 이젠 냉난방시설에 환기시설까지 갖췄어요. 무거운 작업은 기계가 대신 해 주니까 허리 다칠 일도 없죠.”
GM대우의 현장 풍경 변화는 대우자동차에서 GM대우로 바뀌며 위기를 통해 이 회사의 노사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1990년대 후반 대우자동차는 분규 많은 사업장의 ‘간판스타’였다. 외환위기 때 노조는 투쟁만이 살길이라는 각오로 사측과 대립했다. ‘(생산을) 끊겠다’는 노조위원장의 통보식 전화 한 통이면 회사의 생산라인은 완전히 멈추곤 했다. 1년에 파업일수 100일을 넘기는 해도 있었다. 결국 대우자동차는 무너졌고 2001년 2월 1725명을 정리해고했다.
그러나 손에 남은 것은 분노와 절망뿐인 것 같던 대우자동차는 2002년 10월 GM대우로 다시 태어나면서 제2의 도약을 했다. 올해 5월엔 정리해고된 직원 가운데 복직을 원하는 1609명을 전원 ‘리콜’하는 작업도 마쳤다. 현재 GM대우 부평공장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44세.
“회사의 이익이나 생산성만 놓고 본다면 젊은 사람을 새로 뽑았겠죠. 하지만 본인의 선택이 아닌 회사의 어려움 때문에 나간 사람은 다시 일하게 해 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조건도 노사안전본부 전무)
회사는 복직자들을 신차를 생산하는 조립 2공장에 대거 배치했다. GM대우의 새로운 시작을 믿고 맡긴다는 의미였다.
현재 부평공장은 전 공장이 주야 2교대 근무에 특근까지 더해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GM대우의 2002년, 2003년, 2005년 파업시간은 0시간. 생산량은 GM대우가 출범했을 때의 약 4배인 150만 대에 이른다. 7월엔 파업 중이던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판매실적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GM대우 생산직 직원의 90% 이상인 1만 명가량이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소속이지만 이젠 파업집회가 있어도 간부 몇 명만이 참석할 뿐이다. 근로자들 사이에 “일은 해야 한다. 공장은 돌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조립라인 2부 1과의 임영섭(48) 조장은 “주야간으로 공장이 돌고 신차가 출시되는 모습을 보면 파업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젠 ‘파업하기 전에 일단 일해 보자’고 해요. 도전하면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죠.”
‘복직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함께하는 내일 새롭게 시작합시다.’
부평 조립 2공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플래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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