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직연금제 ‘휴직중’?…대기업 가입 36곳 그쳐

  • 입력 2006년 11월 3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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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퇴직연금제가 1년을 맞았다.

퇴직연금제는 안정된 노후대비와 중소기업 근로자 보호를 위해 야심차게 발진시킨 프로젝트다.

외형상으론 그럴듯하다. 10월 현재 1만3485개 사업장에서 14만7057명이 가입했다. 가입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가입하는 회사는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100명 미만 사업장 비율이 98.4%에 이른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감은 물론 특별한 장점도 없어 대기업들은 꿈쩍도 않는 데다 제도상의 문제점까지 노출되고 있어 퇴직연금제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 2020년 300조원… 새로운 금융자본의 핵

퇴직연금제는 회사가 퇴직급여 지급을 위한 자금을 금융기관에 적립한 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주는 제도.

회사가 적립금을 쌓아두는 퇴직금제도에선 회사가 망하면 퇴직금을 날릴 가능성이 크지만 퇴직연금제에선 보험사 은행 증권사 등 외부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고 운용하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증권업계에서는 2020년 300조 원, 2050년엔 무려 2000조 원의 돈이 퇴직연금에 모여 한국 금융자본의 ‘핵’으로 떠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 100명 미만 중소기업 98% 가입… 대기업 노조서 반대

중소기업들은 가입이 활발하다.

생산직에서 20년간 근무한 피혁업체 신우의 안대환(50) 주임은 “우리 같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혹시라도 회사가 부도나면 퇴직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번쯤은 한다”며 “이제 그런 고민을 털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소극적이다. 500명 이상 사업장 가운데 가입한 곳은 불과 36개 회사다.

왜 그럴까. 퇴직연금제는 의무적으로 노사합의 사항인데 노조 측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연금담당 부장은 “정부 정책의 불신감 때문인지 새로운 제도 도입에 대해 노조 측에서 색안경을 끼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산하 사업장에 ‘일단 정확한 지침이 내려갈 때까지 가입을 보류하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거대 금융자본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갖고 돈놀이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신중히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가입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경영평가 가점(加點)을 주겠다며 공기업들을 가입시키려다 최근 한국전력공사 등 13개 공기업 노조가 집단 반발하기도 했다. ▶본보 17일자 A8면 참조

○ 세제혜택 등 제도보완 급하다

증시 활성화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퇴직연금이 증시에 끼치는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

펀드 수탁액은 430억 원 정도고 그나마 대부분이 채권형 상품이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삼성전자 포스코 등 대형 기업들의 퇴직연금이 주식시장에 쏟아져 들어와야 강한 매매주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상의 문제점도 엿보인다.

미래에셋 김대환 퇴직연금 본부장은 “제조업체들은 아직 큰 관심이 없다”며 “기업과 종업원이 실리를 찾을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같은 유인책이 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장점이라곤 손비 인정(기업)과 300만 원 소득공제(개인)가 고작이다.

노동계에선 퇴직연금이 예금자보호법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이 망하면 근로자들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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