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임 아깝죠? ‘노는 손’ 놀려 보세요!

  • 입력 2006년 11월 22일 02시 56분


회사원 최모(36·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씨는 최근 자동차 엔진오일을 바꾸기 위해 경정비업소를 찾았다.

오일을 바꾼 정비사는 “에어컨 항균필터를 지금 교체하지 않으면 에어컨에서 심한 냄새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그러면 필터를 갈아 달라”고 했고 항균필터 교환비용으로만 3만5000원을 더 냈다.

반면 회사원 조모(32·서울 강서구 염창동) 씨는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항균필터를 3개에 2만3000원, 개당 7600원에 샀다.

그리고 판매자가 인터넷에 글과 사진을 곁들여 설명해 놓은 ‘필터 교환방법’에 따라 5분 만에 필터를 바꿔 끼웠다. 조 씨는 “항균필터를 돈 내고 바꾸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타일 등 DIY용품 1만5000여 가지

자동차, 실내 인테리어, 욕실, 생활용품 등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설치할 수 있었던 부품 및 반제품을 사 직접 설치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예전에는 제품 설치방법을 잘 몰라 제품 값과 별도로 숙련공에게 ‘수고비’를 줬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 쇼핑몰의 판매자들과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 또 숙련공들이 직접 올려 놓은 설치방법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 나고 있다. 누구나 관심만 가지면 ‘DIY(Do It Yourself·손수 하기)’로 이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앨빈 토플러는 최근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미래의 소비자인 ‘프로슈머’는 단순히 물품을 구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채널에서 수집되는 정보를 갖고 창조적이고 경제적인 소비를 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장터 옥션에 따르면 벽지 바닥재 타일 수도꼭지 차량용 배터리 램프 등 DIY용 반제품 및 소모품은 모두 1만5000여 가지나 된다. DIY용품 거래도 하루 평균 8000여 건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온라인장터 G마켓도 6000여 종류의 DIY용품을 팔고 있다.

정재명 옥션 생활용품 담당 부장은 “전구 필터 배터리 등 자동차용 소모품은 직접 교환하면 카센터에서보다 최고 5만 원가량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 경기불황 힘입어 제2의 전성기

DIY가 확산된 데는 경기 불황도 한몫했다.

일거리가 사라진 예비창업자들이 앞 다퉈 온라인 쇼핑몰 창업에 나서고 있지만 웬만한 아이템은 이미 나와 있는 상태다. 틈새시장을 노리는 창업자들이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소모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친절한 제품 안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판매자들은 설치 과정을 일일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적게는 3∼4컷, 많게는 15∼20컷씩 설명을 붙여 인터넷에 올렸다. 일부 판매자는 제품 설치 과정을 아예 동영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1998년 부산에서 상경해 시계 노점상 등을 해 온 백성남(38) 씨는 최근 벽지 시트지 바닥재 등을 인터넷에서 판매해 한 달 매출이 2억 원이나 된다.

그는 “DIY상품은 고객이 아는 만큼 팔린다”며 “제품 설치에 성공한 고객들에게는 사은품을 주면서 고객의 학습 욕구도 자극했다”고 말했다.

○ 수고비에 거품은 없나

뒤늦게 DIY에 나서는 소비자들은 “그동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한다.

3년 전 15만 원을 주고 교체한 욕실 수도꼭지가 고장 나 최근 2만5000원짜리 수도꼭지를 할인점에서 구입한 주부 최수정(35·경기 성남시 분당구) 씨는 “인터넷을 보고 남편이 10분 만에 수도꼭지를 바꿔 끼웠다”며 “3년 전에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기호 GS이숍 전자상거래부문장은 “과거 공임(工賃)은 숙련도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지만, 소비자에게 공개되지 않은 정보의 값을 치르는 성격도 있었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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