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땀의 가치에 눈뜨다

  • 입력 2006년 10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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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들을 돕고 있는 SK텔레콤 자원봉사단. 사진 제공 SK텔레콤
장애우들을 돕고 있는 SK텔레콤 자원봉사단. 사진 제공 SK텔레콤
시각장애인과 새장을 만드는 KT ‘사랑의 봉사단’. 사진 제공KT
시각장애인과 새장을 만드는 KT ‘사랑의 봉사단’. 사진 제공KT
《사회 공헌의 트렌드가 진화하고 있다.

기부에서 땀으로.

기업의 직원들은 물론,CEO까지 재난이 있는 곳,가난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팔 걷고 나선 그들은 이제 함께 나눌 때 얻는 행복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우리 함께’ 특집기사목록

▶ 땀의 가치에 눈뜨다

▶ 소리 없이 세상에 보답한다

▶ 江 살리고 공원 짓고… 기업, 주민속으로 ‘풍덩’

▶ 한국판 빈민은행’ 희망가게서 행복나누죠

▶ ‘더불어 사는 세상’ 일구는, 발로 뛰는 자원봉사

▶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 집수리…지역사회와 相生

‘도봉구 방학동의 반지하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집에는 여상에 다니는 손녀와 거동이 힘든 할머니가 살고 있었죠.

부모의 이혼,그리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어디론가 떠나버린 아버지.

기둥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빠져나간 그곳은 궁핍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청소를 하고 도배를 하고 장판을 다시 깔았습니다.

할머니는 연방 고맙다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손녀가 창피하다고 나갔는데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손녀와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그냥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SK텔레콤 사회공헌팀의 한혜승 매니저는 2003년 4월 첫 자원봉사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그때 집안 청소를 하다 손녀의 책갈피에서 메모가 뚝 떨어졌다.

애써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 면세점에 취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기업 사회 공헌의 트렌드가 기부에서 ‘땀’으로 바뀌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9월에 발표한 ‘기업 사회봉사 활동의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114개 조사 기업 중 74.6%가 임직원 봉사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체험과 노동 위주의 활동이 늘어나는 추세다.

활동 건수는 2004년에 비해 27.1% 증가했으며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이 전사 차원의 봉사조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은 올해 초 사회 공헌 활동을 총괄하는 사회봉사단에 사장직을 신설했다.

국내에서 사회 공헌 활동을 전담하는 최공경영자(CEO) 자리가 생기기는 처음이다.

돈을 잘 버는 기업에 머물지 않고 사회 공헌에서도 최고가 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제 사회 공헌은 기업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국제표준기구(ISO)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나타내는 지수 ‘ISO 26000’제정을 준비 중이다.

사회 공헌에서도 국제적 인증 지표가 생기는 셈이다.

기부로 상징되는 소극적 사회 공헌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땀을 흘리는 적극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나 홀로’에서 ‘우리 함께’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 기부에서 땀으로

SK텔레콤 동부네트워크 본부에 있는 ‘한아름 봉사단’의 정기 활동은 매월 일곱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은 ‘시니어 헬프(senior help)’.

홀로 사는 노인을 미리 찾아가 그 집에 필요한 것을 파악한 뒤 청소와 도배, 이불빨래 등을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지체장애우 목욕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월 1회 방문해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목욕과 산책, 식사를 도와준다.

회원들의 ‘봉사 수첩’엔 준비물 마련과 방문 일정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아이들의 공부방 지도와 무료급식, 중증 장애노인과의 야외 나들이도 빠지지 않는다. 이번 겨울에는 300가구 분량의 김장김치 나누기, 연탄 나르기, 난방유 배달, 전기장판과 이불 나누기를 계획하고 있다.

“사실 매달 일곱 차례의 봉사를 준비하고 참가하다보면 사생활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하지만 땀과 정(情)을 나누다 보면 묘한 중독성이 있어 계속 참여하게 됩니다.”(SK텔레콤 김도영 사회공헌팀장)

기업이 흘린 땀은 재난 현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올 7월 강원 평창군 진부면. 가옥은 집중호우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길은 산에서 밀려온 토사로 사라졌다. 파란 조끼를 입은 30여 명이 토사를 치우며 구슬땀을 흘렸다. 구호대로 파견된 ‘삼성 맨’들이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은 수해가 발생하자 그룹 차원의 구호활동을 개시했다. 헬기 4대를 동원해 쌀 3000가마와 생수 3000통 등 구호품을 고립지역 주민에게 공수한 뒤 복구 작업에 나섰다.

삼성이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2002년 마련된 사회봉사단의 ‘재난재해 구호 시스템’ 덕분이다.

재해가 발생하면 1단계 시스템이 작동돼 보안전문 업체 에스원이 운영하는 ‘삼성 3119 구호대’가 현장에 즉각 투입된다. 전문요원으로 구성된 구호대는 인명구조, 물빼기, 위험물 처리 등을 책임진다. 그 뒤를 이어 삼성건설의 중장비팀, 에버랜드의 급식팀, 삼성의료원의 의료봉사팀, 삼성전자의 가전 애프터서비스팀이 단계별로 투입된다.

삼성은 1994년 국내 최초의 사회공헌 전담조직인 사회봉사단을 출범시킨 뒤 10여 년간 기업 사회공헌의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올해 상반기에만 임직원 15만 명 가운데 77%인 11만5000명이 100만 시간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다.

LG전자 창원공장의 ‘넝쿨회’는 1987년 발족한 뒤 20년간 봉사활동을 펼쳐온 단체로 퇴직자까지 참여하고 있다. 경남 밀양시에 있는 한 보육원을 계속 찾고 있는데 1일에는 아토피에 약한 아이들을 위해 도배 봉사를 했다.

“두 아이가 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언제 밀양에 가느냐며 조른다. 아이들끼리 메일도 주고받는 친구 사이가 됐다. 발족 초기 처녀, 총각 사원이었던 회원들의 모임이 20년간 유지된 것은 한번 하고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회원들끼리 땀의 가치를 나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넝쿨회 한진교 회장)

현대제철의 ‘다물단’은 현장 근로자 200여 명으로 조직돼 있다. 이들의 ‘봉사 무기’는 망치와 톱. 1999년 이후 휴일마다 도배 재료를 들고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 활동에 나섰다. 명절에는 음식을 전달하고 겨울철에는 김장을 해 노인들에게 전해준다. 올 추석에는 인천, 포항, 당진 공장 인근의 무연고 장애인을 직원 가정으로 초청해 이틀간 숙식을 같이 했다.

○ 땀도 효율적으로 흘려라

사회공헌에 열성인 기업들은 요즘 ‘땀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KT와 한국야쿠르트는 그런 점에서 업계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전국 1만3000명으로 구성된 KT ‘사랑의 봉사단’은 공부방 업그레이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전국 곳곳에 퍼져있는 KT의 지사를 통해 환경이 열악한 공부방과 자매결연을 맺어 정보기술(IT) 시설과 학습 환경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특히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에는 봉사단원이 부모를 대신해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 공연장 방송국 지역문화재를 방문하며 현장체험학습을 하는 ‘신나는 주말학교’를 운영한다.

한국야쿠르트의 사회공헌 토대가 된 것은 1975년 시작된 ‘사랑의 손길 펴기’ 운동이다. 임직원들은 입사와 동시에 회원으로 가입하며 월 1회 이상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야쿠르트 아줌마’의 힘은 이 회사 사회공헌 활동의 핵심이다. 1994년부터 동사무소 복지관과 연계한 ‘외로운 노인 건강 확인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1만3000명의 아줌마들이 노인의 집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건강을 확인하며 빨래와 청소를 하기도 한다. 3월에는 홀로 살다 엉덩이뼈가 부러진 할머니를 구조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야쿠르트 아줌마 5000여 명이 11만 포기의 김장을 해 2만5000여 곳에 나눠줬다.

○ 이제는 ‘사회적 여가’의 시대

최근 사회공헌의 트렌드는 자원봉사(Volunteer)와 즐거움(Entertainment)이 결합한 ‘볼런테인먼트(Voluntainment)’의 단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여가의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여가의 개념이 일반화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처음에는 여가의 대부분이 레저활동에 집중됐지만 점차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도 기부에서 땀으로 바뀌며 다시 한번 질적 변화를 모색하는 단계에 있다.”(숭실대 정무성 사회복지대학원장)

미국 전역에 있는 민간봉사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촛불재단’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미국 454개 기업 중 절반가량에서 가족 자원봉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은 국내에서 가족 자원봉사가 가장 활성화됐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이 회사 중부네트워크 본부의 박영주 매니저는 “정신지체장애우 시설을 찾아간 일곱 살배기 딸이 ‘모습은 똑같은데 생각하는 것만 어리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봉사활동은 가족과 회사, 사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지렛대”라고 말했다.

글=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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